“너희들, 밤에 엄마 아빠 보고 싶다고 울 거지?” 임간학교 행사를 하루 앞두고 우리반 아이들에게 물었다. 밤새 잠 안자고 보채며 징징대는 일학년 아이들을 보아온터라 솔직히 걱정되었던 탓이었다. 이런 내 물음이 우습다는듯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였다. “아이 참, 우리가 뭐 애기인가요?” “그 말 믿어도 될까?” “에이, 엄마 대신 친구들이 있잖아요?” 이제 여덟살 밖에 안되었으면서 어른인척 하는 우리반 아이들... 믿어보기로 했다. 걱정은 산더미 같으면서도...
임간학교라 불리는 수련활동은 아이들에겐 집밖에서 하룻밤 보내는 신나는 체험활동이지만, 일학년 선생님은 아예 몸이 부서질 각오를 하고 가야하는 고역 중의 고역인 큰 행사이다. 솔직히 고학년 선생님들은 수련현장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 한가함의 여유마저 누릴 수 있다. 담임선생님이 없어도 굳이 찾지 않는 적응력 빠른 고학년 아이들을 둔 까닭이다. 그래서 아이들 활동 시간에 교사와 관리자 대결 활쏘기라던지 수련시설의 각종 놀이를 체험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저학년 선생님은 한시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동동거리고 뛰어다녀야 한다. 담임선생님이 보이지 않으면 금새 ‘우리 선생님이 어디 갔느냐?’고 찾고 불안해 하는 까닭이다. 수련원측의 교관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강한 기합을 주지말고 유연하게 지도해달라는 학교측의 주문에 이제는 교관의 말빨도 먹히지 않는 탓이다. 그래서인지 일학년 꼬마에게 교관이 쩔쩔매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어떡하면 좋아요? 쟤가 저녁을 안먹겠다고 떼를 쓰네요.” “왜요?” “자기가 지금 무척 화가 나 있으니 건들지 말래요.” 이런 개인적인 고충부터 단체활동의 어려움까지 담임은 일일이 개입하고 보살펴줘야 한다. 그래서 학교 교실에서 수업할 때보다 몇 만배의 힘이 더 든다.
아침이 되면... 유난히 떡이 져서 빗조차 들어가지 않는 여학생들의 긴머리를 물을 묻혀 일일이 빗기고 묶어줘야 한다. 그리고 널브러진 이불 개는 것도 가르쳐 줘야 하고 아침 먹을 시간까지 함께 산책하며 놀아줘야 한다.
낮의 활동시간엔... 아이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탈자가 없는지 아픈 아이는 없는지 장난을 심하게 쳐서 단체활동을 방해되는 아이는 없는지 끊임없이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저녁을 먹은 뒤의 자유시간엔... 긴장이 풀린 이 때가 사고가 가장 많이 나기 때문에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열고 닫는 문은 안전한지, 방안의 물건들이 노후되어 위험한 것은 없는지, 아이들의 놀이는 과격하지 않은지 하나하나 지켜봐야 한다.
마지막으로 잠자기 전엔... 샤워실에 데리고 가서 몸 씻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 남학생은 남선생님이 맡아서 여학생은 여선생님이 맡아서... 머리가 긴 여학생을 씻기는 일은 남학생보다 배의 힘이 더 든다. 여학생들의 머리는 왜 그리도 한결같이 긴지... 그 후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잠을 재운다.
친구들과 함께 첫날밤을 보낸다는 흥분에 좀체 잠 못드는 꼬마아이들... 모두 잠을 재운 뒤에도 혹시나 깨어 울고 보채는 아이가 있을까봐 특히 일학년 선생님은 아이들과 같은 방에서 잠이 드는 게 보통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1박 2일을 보내고 오면 완전 초죽음이 된다. 몇 년동안 어디서 노숙자생활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몰골은 꾀죄죄하고 몸은 파김치가 되어 흐느적거린다. 그래도 마음만은 날아갈듯 가볍고 뿌듯하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몸으로 마음으로 부대끼면서 정말 엄마가 된 것 같은 끈끈한 정을 체험했기에... 함께 같은 방에서 잠들고 일어난 아침, 화장을 안해 누렇게 뜬 내 얼굴을 보고는 “선생님 얼굴이 이상해요” 하면서도 이불차를 태워주는 놀이에 동참하며 즐거워하던 우리반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희들은 친구들이 있어서 울지 않았지만, 난 너희들이 내 곁에 있어서 힘들지 않았어. 밤에 칭얼대는 친구 한 명 없이 임간학교 생활 잘해준 거 무지무지 고마워. 학교 엄마인 내가 힘들까봐 배려해 준 거 잘 알아. 우리 이쁜이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