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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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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욕 좀 안 하면 안 되겠니?


월요일 점심을 먹고 난 뒤, 오랜만에 교정을 거닐었다. 교정 여기저기에는 식사를 끝낸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몇 명의 아이들은 다음 주에 있을 기말고사를 앞두고 벤치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또한 어떤 아이들은 기말고사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수다를 떨며 망중한을 즐기기도 하였다. 모든 아이들의 얼굴 위로 행복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이들의 재재거리는 소리에 왠지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아이들의 그런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난 뒤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한 여학생의 상스러운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하였다. 그 여학생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욕설로 대변하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이 욕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는 있지만 그 욕설이 이렇게까지 심할 줄 몰랐다. 그 아이는 말끝마다 똑같은 토씨의 욕을 붙여가며 친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그런데 옆에 함께 앉아 있던 어느 누구도 그 아이의 말에 짜증을 내지 않았다. 더욱 이상한 것은 욕을 하는 내내 그 아이는 연신 웃음을 머금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욕설이 너무 지나치다 싶어 그 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 아이는 선생님인 내가 다가가도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눈을 흘기자 그제야 그 아이는 미안하듯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언어 순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잠깐이나마 쓴 소리를 하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다.

무엇보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의 말에 의하면, 아이들과 함께 욕(辱)으로 수다를 떨고 난 뒤 오히려 공부가 더 잘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으로 욕(辱)이 최고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방법론에 있어 다소 문제가 있었으나 그 아이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사실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들은 주말과 휴일도 잊은 채 오로지 공부에만 전념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작해야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전부이다.

그나마 성격이 활달한 아이들의 경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성격이 내성적인 아이들의 경우, 적절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이런 아이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득 지난 날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겪었던 일이 생각난다. 때마침 모의고사 시험을 앞두고 있는 터라 자율학습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여느 때보다 진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의 행동이 눈에 띠었다. 그 아이는 평소와는 달리 공부에 열중하지 않고 내 눈치를 살피며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아이의 행동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수상하게 여긴 나머지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 아이는 내가 옆에 서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글 쓰는데 심취해 있었다. 내가 헛기침을 두 번하자 그제야 깜짝 놀라며 쓰고 있던 공책을 팔꿈치로 감추었다. 그런데 팔꿈치 사이로 삐져나온 공책위에 적힌 글을 우연히 엿보게 되었다. 모든 글들이 적색 펜으로 적혀있어 정확하게 읽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었으나 몇 문장은 확실히 읽을 수가 있었다.

“죽고 싶다. 시험이 싫다. 입시 지겹다. 등”

평소 말없이 학업에만 열중하던 여학생이라 이 아이에게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 아이의 고민은 욕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했던 아이에 비해 훨씬 더 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낙서를 하며 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렇듯 아이들은 성향에 따라 스트레스 해소 방법도 달랐다.

무더워진 날씨에 아이들이 지쳐가고 있다. 틀에 박힌 일상에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쌓여만 간다. 그래서 일까? 아이들은 이 지겨운 입시가 빨리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지도 모른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아이들에게도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입시로 쌓인 스트레스를 맘껏 풀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 고3 담임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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