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 발을 들여놓은 지 올해로 어언 18.5년이 되었다. 새파란 총각이었던 청년이 이젠 체중도 불고 배도 나온, 누가봐도 중년의 남자라 할 만큼 변해버렸다.
어제는 모처럼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 시내 모 고깃집에 모여 서로 반갑게 손을 잡고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그런데 필자를 본 동창들은 하나같이 “야, 넌 왜 그렇게 안 늙니?”라는 인사말을 건넨다. 오랜만에만나서 으레 하는 인사치레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모두가 하나같이 그런 말들을 하는 통해 나 또한 그 인사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속으로 생각한다. ‘뭐? 내가 젊어 보인다고? 매일 새벽에 출근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는데 젊어 보인다니? 그거 참 희한한 일이로군.'
그런데 한두 사람도 아니고 만나는 동창들마다 그런 인사말을 건네는 데야 나로서도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같은 연배의 친구들을 살펴보니 훌렁 까진 이마에 이미 머리까지 허옇게 쇤 채 늙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거참, 아니 자네들은 지금 나이가 몇인데 벌써 그렇게 중늙이가 다 되었단 말인가. 한심하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막상 그들의 무한경쟁 사회에서의 고단한 생활이 생생하게 느껴져 내심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렇다. 교직생활 18.5년에 늙지 않고 그대로라는 말을 들었으니 거기에는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매일매일 정신없이 지내며 바쁘다고 푸념한 일상들이 실은 내 젊음과 건강을 지켜준 소중한 보배라는 생각이 슬며시 들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교실문을 열고 환기를 시킨다. 아이들이 오기 전 책상 줄을 맞추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진 휴지며 칠판의 낙서까지 깨끗하게 지우고 나면 아이들은 그제서야 하나 둘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8시 10분쯤이 되면 등교한 아이들 하나하나 살펴보며 아픈 곳은 없는지 얼굴에 근심은 없는지 찬찬히 관찰하다보면 시간은 금세 8시 20분이 된다. 그때부터 아침 5분영어방송을 지도하고 나면 8시 25분. 수업시작 5분전이다. 부리나케 교무실로 내려와서 첫 시간 수업 준비를 해서 허겁지겁 교실로 가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수업이 끝나면 같은 또래 선생님들과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그도 아니면 다음 시간 교재연구를 한다. 이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 5시 10분. 학생식당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아이들 석식지도를 하고 나면 여섯시. 그때서야 식당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급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다시 서둘러 야자 감독을 한다. 야자 감독이 끝나면 밤 10시.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뒤 다음 날 수업할 부분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훑어본 다음 잠자리에 든다. 이런 일상이 일주일 내내 반복이 된다.
일반인들이 보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단조로운 생활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생기발랄한 아이들과 웃고 떠드는 재미가 있기에 일반 사회인들보다 덜 늙지 않는가 하는 추측이 든다.
또 가끔은 녹음이 싱그럽고 온갖 꽃들이 만발한 교정에서 해맑은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때나, 졸린 눈을 비벼가며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수마가 몰려오는 오후 수업에도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내가 하는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들을 볼 때 리포터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
이렇게 매일 매일을 가슴뛰는 아이들과 설레며 살아가는데 어찌 내가 동창들보다 젊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동창 친구들의 인사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이제 확신한다. 내 삶의 행복 충전소인 우리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한, 나의 기분 좋은 하루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남들 눈에는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처럼 보여도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마치 빛나는 보석처럼 소중하고 귀중한 시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