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7월 29일) 무더위에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의 향학열은 식을 줄 모른다. 이 무더위가 보충수업이 끝나는 날(8월 9일)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기상청의 예보에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불볕더위로 폭염특보가 발효된 지역도 여러 곳이다.
그나마 학교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마 교실이 아닌가 싶다. 에너지 절약차원에서 매시간은 아니지만, 가끔 틀어주는 에어컨에 교실은 항상 냉기가 감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실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무더운 날씨로 무기력해져 가는 아이들을 위해 생활의 활력소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일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팝 퀴즈(Pop Quiz:예고 없이 보는 시험)를 내어 맞추는 아이 3명에게 자율학습을 빼주는 것이었다.
3교시 영어 시간. 생각해 낸 내용을 아이들에게 먼저 일러주었다. 내 제안에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잔뜩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사전에 그 누구에게도 예고되지 않았기에 내가 어떤 문제를 낼지 아무도 몰랐다. 아이들 또한 나의 제안에 대해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아이에게 다소 유리했지만 말이다. 모든 문제는 영어로 듣고 답하는 문제였다.
"지금부터 선생님이 낸 문제를 먼저 맞히는 사람 3명에게는 집에 일찍 귀가하는 특혜를 주겠다. 알겠니?"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은 잔뜩 긴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기대하는 눈치였다. 먼저 아이들에게 퀴즈를 맞히는 요령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준비한 문제를 내기 시작하였다. 난이도는 상. 중. 하 각 1문제씩이었다. 물론 3문제 중 1문제는 최근 불거진 독도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였다. 문제를 듣고 난 뒤, 먼저 손을 들고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승자가 되는 것으로 하였다.
생각보다 문제가 어려웠는지 예상 외로 3명의 아이를 선정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무렵, 3명의 아이에게 본 수업(6교시)이 끝나는 대로 집에 가도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은 부러운 듯 그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자율학습 1교시. 교실 문을 열고 제일 먼저 주목한 곳은 자율학습 인원을 적어놓은 칠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칠판에 적어놓은 인원이 지난날과 다름이 없었다. 분명히 3명이 빠진 인원이 적혀져 있어야 하는데 무언가 착오가 생겼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실장에게 인원 파악을 다시 해 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실장은 정확하다며 집에 가기로 되어 있는 아이들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집에 가라고 허락을 했던 아이들 3명 모두가 자리에 앉아 자율학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너희 집에 안 갔니?" "열대야 때문에 집에 가면 공부가 더 안 돼요. 차라리 시원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좋아요."
학창시절, 자율학습에 불참하고 집에 귀가하는 것이 모든 아이들의 바람이기도 했는데 결국 이 무더위가 아이들의 그 바람마저 꺾어 놓았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한 녀석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생님, 친구들이 고생하는데 의리 없이 저희들만 집에 갈 수 있나요?"
그 말에 아이들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야유를 보냈다. 어쨌든 친구를 생각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그다지 미워 보이지만 않았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내 기분까지 좋아졌다.
자신의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은 서로서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은 중복의 무더위도 결코 갈라놓지 못했다. 무더운 중복 날, 삼계탕을 먹지는 못했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아이들이 만든 감동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