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라고 해서 또 그저 그런 연수려니 싶었다. 늘 같은 계열의 타교원이나 왕년에 연수분야에서 날렸다는 퇴임교장을 초대해 강의를 듣는 똑같은 패턴의 지리한 연수. 학습모형이 어떻구, 수업지도안이 어떻구, 다람쥐쳇바퀴돌듯 반복되는 시간때우기식 연수….
가르침을 업으로 삼는 교사에게 이런 연수가 필수목록인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한두번이지 늘 똑같은 주제의 연수만 받다보면 질리게 마련이다. 한번쯤은 밖에 나가 외식도 해봐야 늘 먹던 밥의 존재가 그리운 것처럼, 연수도 한번쯤은 색다른 주제로 숨통을 틔워주어야 유익한 배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몇십년동안 계속해온 아나로그식 연수를 고집할 것인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법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도 이제는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우리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세대라 할지라도 졸리움을 유발하는 일방통행식의 강의는 재미가 없다. 딱딱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2시간여동안 유인물 보면서 듣기만 하는 연수는 제 아무리 날고기는 스타강사가 온다해도 환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여름방학을 앞두고 전교직원이 받은 MBTI 심리검사 연수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 강사는 교직계통은 아니었지만 심리검사 분야에서만큼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 전문가였다. 그래서인지 4시간의 롱타임이었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쾌상쾌통쾌하게 연수를 받을 수 있었다. 우선 강의를 듣는 교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연수이기에 더욱 그랬다.
‘있는듯 없는듯 조용한 저 동료는 무슨 형일거야.’ ‘언제나 명랑한 저 선생님은 분명히 무슨 형일거야.’
예상하는 재미에 맞추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동료들이라 그런지 예상의 대부분이 맞아떨어졌다.
"선생님은 무슨 형으로 나왔어요?” “내 그럴 줄 알았어요. 선생님하고 완전 똑같애.”
결과가 나온 뒤에 서로서로 관심을 갖고 웃고 떠들고 하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었다. 나와 같은 유형이면 죽이 맞아 신나는 거고, 다른 유형이면 모자란 점을 보완해줄 수 있어 좋은 거고, 이래저래 16가지 유형의 동료를 다 친구로 둬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학교 직원들은 아주 적절하게도 반반이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왔다. 서구인은 약 70%가 외향형이고 한국인은 약 60%가 내향형이라는데 우리는 50% 딱 반이니 환상의 팀웍인 셈이다.
우리학교 교직원에게 가장 많은 형은 우리 한국인에게 가장 많다는 내향형의 검열관형이었다. 난 한국인의 3%라는 외향형의 열정가형으로 나왔다. 역시나 예측한 대로였고 만족스러웠다. 열정이라는 단어가 우선 맘에 들었고 내가 평소에 파악한 장점과 단점과 맞아떨어졌기에 신뢰가 갔다.
테스트가 끝난뒤 외향(E)형이냐 내향(I)형이냐에 따라 소그룹으로 나뉘었고, 강사가 던지는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확실히 내가 속한 외향형 그룹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시끌벅쩍했고, 내향형 그룹은 있는지 없는지 조용했고 진지했다.
외향형들은 내향형들에게 제발 별것도 아닌걸로 꼬장꼬장하게 따지지 말고 대강 넘기면서 편하게 살자고 했고, 내향형들은 외향형들에게 제발 뒤치다꺼리할 일좀 여기저기 만들고 다니지 말라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오늘과 같은 이런 연수라면 골백번을 받는다해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성격유형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좋다는 것은 더 잘할려고 할거고 나쁘다는 것은 더 고쳐나가려고 할거고...
간만에 유쾌한 연수로 기분이 업된 날, 관리자에게 부탁하노니 이런 고급연수가 일회용으로 사장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각계각층에서도 인력을 선발하고 채용할 때나 적재적소에 배치하려고 할 때, 이런 심리유형을 백분 활용한다고 한다고 하지 않은가?
반복되는 일상에 인내심이 강한 사무적인 사람, 일처리보다는 마음이 넓어 인화에 도움이 되는 사람, 다방면에 재능이 뛰어나고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 등등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제대로 써먹는 그런 혜안을 갖길 바란다. 관리자 개인의 유형에 맞춰주지 않는다고 배척하지 말고….
나 또한 아이들의 성격유형을 제대로 파악한뒤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보완해주는 커다란 가슴을 가진 선생님으로 거듭나기를 내 스스로에게 바램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