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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신현득 선생님의 단골집 '청진옥'이 문닫는다


                         이 전 안 내

그동안 청진옥을 사랑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청진동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부득이 2008년 8월 1일
르미에르 빌딩 1층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위치에서는 2008년 7월 31일까지 영업
예정입니다.
다시 한 번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변함없는
맛과 정성으로 여러분을 모실 것을 약속드립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청진동 재개발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신현득 선생님이 자주 가는 단골 '청진옥' 영업이 7월 31일 오늘자로 마지막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이 기분이란….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일 모두 팽개쳐두고 신현득 선생님 뫼시고 마지막으로 청진옥에서 해장국이나 먹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이전하게 되는 르미에르 빌딩의 음식점에서 먹는다면 청진옥에서 먹던 그 토속적인 맛이 날 것 같지 않은 기분 때문이었다. 해장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원조 쇠뼈해장국 전문 청진옥’을 알게된 건 순전히 신현득 선생님 덕분이었다.

충무로에서 모임을 가지면 2,000원짜리 커피집 설악산에서 만나 그 위층의 이조집에서 5,000원짜리 생선구이를 먹었고, 청진동에서 모임을 가지면 2,300원짜리 커피집 도토루에서 만나 바로 맞은편 청진옥에서 5,000원짜리 해장국을 먹었다.

신현득 선생님의 단골집은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게 특징이었다. 그리고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 주인이 모두 이웃집 아줌마나 아저씨처럼 푸근하다는 것, 종종 문단의 한 획을 그은 유명문인들을 뵐 수 있다는 것. 늘 타인에게 명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한국동시문학회 부회장인 신현배 시인과 마주친 것도 청진동의 도토루커피숍에서였다.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장인 신현득 선생님의 일을 도와드리면서 처음에는 만나는 장소에 대한 불만이 무척 많았었다. 근사하고 세련된 먹자골목이 널려있는데 왜 하필이면 퀘퀘한 청진동 뒷골목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다. 또한 모임이라는게 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뭄에 콩나듯이 있는건데 이왕이면 폼나는 곳에서 대접해 드리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런 내 뜻을 이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고집이 대단하신 분이라 아무리 내 정씨 고집이 센들 꺾을 수가 없는 탓이었다.

신현득 선생님의 청진옥 주문 메뉴는 한결같았다. 해장국에 소주 한 병, 늘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안남기고 뚝배기의 밑바닥을 탈탈 털어보이고서야 수저를 놓으셨다. 그리고는 먹는 속도가 느린 나를 끝까지 지켜보면서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의 급식지도를 하듯 잔반검사를 하셨다.

하지만 그런 염려와 달리 청진옥의 해장국은 미식가인 내 입맛을 잡아당겼다. 무엇보다 양과 선지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혔고 목구멍으로 술술 잘 넘어갔다. 된장을 푼 해장국에 깍두기 한 조각을 얹어 꿀떡 삼키면 그 맛은 꿀맛이었다. 반찬이 달랑 깍두기뿐이었지만 뚝배기 한 그릇 비우기에는 그만이었다. 그 뒤로는 나도 단골이 되었다.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도 드나들었다는 71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원조 쇠뼈해장국집 청진옥, 아동문학의 한 획을 그은 대문인이면서도 소탈했던 신현득 선생님과 소주 한 병, 기다란 의자를 쉴틈 없게 만들던 단골손님들, 해장국에서 우러나오던 찐한 고향의 맛, 그리고 청진동의 퀘퀘한 뒷골목의 한 점이었던 이 곳 청진옥이 오늘부로 막을 내린다.

도토루커피숍이야 일본이 원조인 체인점이니까 문을 닫는다 해도 별로 속상해할 것도 없지만…. 경제개발 논리에 의해 문화예술인들에게 사랑받던 장소가 하나씩 하나씩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는 사실이 못내 서글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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