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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간판보다 실력으로 해결하자"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진도지도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몇 년 전,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절실하게 느낀 바 있다. 입시철이 되면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과 무관하게 대부분 4년제 대학에 원서를 넣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학생들이 인문계 고교에 진학할 때는 4년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기에 그 자체를 탓할 것은 못된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소실은 물론이고 직업에 대한 비전도 없이 무작정 4년제 대학을 고집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의 인근에는 대기업 공단이 입주해 있어서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취업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한창 대입 상담이 진행될 무렵, 몸이 부지런하고 성격이 무난하여 어느 곳에서나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 듯 싶은 학생이 있어 인근에 있는 전문대학을 추천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비록 내신과 수능 성적은 좋지 않지만 그래도 4년제 대학만큼은 반드시 나와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물론 그 학생은 자신의 바람대로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선택했다. 그러나 담임교사가 추천한 전문대학의 관련 학과는 인근의 대기업이 공동 교육하는 주문식 교육과정을 통하여 학생이 졸업한 후 그 기업에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물론 그 학생뿐만 아니라 여러 학생들에게 이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진학할 것을 권유했지만 담임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이같은 현상은 대입 원서가 과거처럼 수기(手記)로 작성하여 담임교사나 학교장의 날인을 거쳐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인터넷을 통하여 당사자가 직접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도 한 원인이지만, 주된 이유는 학생은 물론이고 학부모까지도 4년제 대학에 대한 맹목적 집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증가하고 있어도 무조건 4년제 대학을 나오고 봐야 한다는 식의 뿌리깊은 학력선호사상이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과거와는 달리 기업의 근무환경도 점차 자동화되면서 사무직과 현장 근무직의 차이도 거의 사라졌다. 오히려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사람이 회사 내에서 우대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특성화된 전문대학을 가거나 직업학교 쪽으로 진로를 정하는 학생들은 날이 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이같은 고학력 인플레이션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2008년 교육기본통계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도에 일반계와 전문계를 합한 고교생들의 대학 진학률은83.8%로 나타났다. 이는 대학 진학률이 1990년 33.2%에서 2000년 68%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전체 고교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일반계 고교의 4년제 대학 편중 현상이다. 2007년도를 기준으로 전문계고는 전체 진학률 71.5% 가운데 전문대 진학률은 46.4%로 4년제 대학 진학률 24.7%의 2배 수준이다. 그러나 일반계고는 전체 진학률 87.1% 가운데 4년제 대학이 71.1%인데 반해 전문대는 15.6%에 불과하다. 고교 졸업 후 취업률(취업자수/{졸업자수-[진학자수+입대자수]}×100)을 보면 더욱 대조적이다. 전문계고의 취업률은 71.6%이지만 일반계고는 고작 6.8%에 불과하다.

오로지 4년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고교 운영 시스템은 결국 고학력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나 사회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조건 4년제 대학을 나와야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간판이 아닌 재능과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하다. 또한 현재의 고교 진로지원 시스템도 점수 위주의 획일적인 정보 제공이 아닌 소질이나 적성 그리고 직업에 대한 전망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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