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국화를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국화 중에서도 가을에 피는 추국(秋菊)을 특히나 좋아하셨다. 9월 하순 경 자연 개화하는 황색의 소국(小菊)이 필 무렵이면 어머니께서는 소녀처럼 상기되셨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초라한 시골집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집 주변 공터에 국화를 심으셨다. 국화를 심되 부잣집 정원에 있는 비싸고 화려한 아네모네형 황국이 아니라 그저 야산에 아무렇게나 자생하는 이름 없는 그런 야국(野菊)들이었다. 울타리에는 꽃대가 가녀린 들국화를 심으셨고, 앞마당엔 줄기와 잎이 모두 청초한 백국화를 캐다 심으셨다. 나는 들과 산에서 아무렇게나 자생하는 야국들이 그렇게 아름답고 화려한지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집 주변에 가득한 야국들이 고결한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기를 풍길 무렵이면 어린 나이임에도 까닭 없이 가슴이 울렁거리곤 했다.
어머니는 국화 외에도 도라지꽃도 참 좋아하셨다. 보라색 도라지꽃이 뒤란 텃밭에 지천으로 피어나면 어머니는 일손을 놓으신 채 한참이나 정신 없이 그 꽃을 바라보시곤 했다. 도라지꽃과 거의 같은 시기에 개화하는 꽃으로 감국화가 있는데, 노란 꽃이 피었을 때 보면 꽃잎이 복스럽고 오밀조밀한 것이 친근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감국화가 만개할 무렵이면 어머니께선 꼭 꽃잎을 따서 그늘에 말린 다음 국화주와 국화전, 차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야생 국화는 꼭 누군가가 흙을 북돋아주고 거름을 주어야만 풍만한 꽃을 피우는 습성이 있다. 그것을 아신 어머니께선 유월 초쯤부터 미리 깻묵과 쌀겨를 섞은 퇴비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두시고 발효를 시켰다가 국화 꽃봉오리가 송아지 젖꼭지 만하게 커지면 국화분 주변의 땅을 둥그렇게 파시고 시비(施肥)를 하셨다. 그러면 여린 국화분들은 영양분을 빨아들이며 자립하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한다. 때문에 아주 작은 초가을 바람에도 새끼 국화들은 불안하게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바쁜 농사일 중에도 꼭 짬을 내시어 부목을 박고 가는 새끼줄로 얼기설기 묶어 두시곤 하셨다. 그러면 여린 국화분들은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새끼줄을 의지 삼아 자리를 잡고 개화를 시작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드디어 국화가 하나 둘 탐스런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초라했던 시골집은 금세 화려한 치장을 한 채 그 도도한 자태를 뽐내곤 했다.
또 한가지 어머니께서는 물질에는 별다른 집착이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유독 꽃들에는 욕심이 많으셨다. 봄이면 개나리와 진달래를 비롯, 제비꽃, 은방울꽃, 모란, 할미꽃 등이 시골집을 화려하게 장식했고, 가을이면 어른 주먹만한 봉황국을 비롯해 산국과 해국, 쑥부쟁이 등이 집 주변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이 같은 꽃들을 통해 당신의 꿈을 의인화하셨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어머니께 이렇게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엄마, 엄마는 물질에는 욕심이 없으시면서 왜 화초들에는 그렇게 욕심을 내세요?"하고 물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화초에 대한 욕심은 아무리 부려도 탈이 없지만, 물질에 대한 욕심은 반드시 탈을 부른단다. 소금물을 보거라. 마실 때는 잠시잠깐 갈증이 해소되지만 마시고 나면 곧 더한 갈증이 생겨 또 마시게 되고 그러다 보면 결국 나중에는 배가 터져 죽게된단다."
그랬다. 어머니는 자연을 통해, 국화를 통해 이십 년을 공부한 아들도 깨우치지 못한 인생의 진리를 몸으로 깨우치신 것이었다.
올해로 팔순이 되신 어머니께서는 당신이 그렇게 열심히 가꾸어놓은 시골집의 아름다운 야국들을 보지 못하신다. 재작년부터 치매가 심해지셨기 때문이다. 국화처럼 애지중지 사랑을 주셨던 이 막내아들도 이젠 알아보시지 못하신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가꾸어놓으신 국화분에서는 올 가을에도 어김없이 황금빛 꽃이 만발하고 시골집 울타리에는 흰 야국들이 꽃잔치를 열고 있다. 이런 것을 보며 나는 옛 시인이 읊었다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시구가 생각나 다시 한번 인생무상의 허무함을 느낀다.
끝으로 모든 사람의 일생은 하나님께서 쓰신 동화(童話)와 같다는 말처럼, 치매에 걸리신 우리 어머니의 기억 속에 부디 국화꽃처럼 모두 곱고 아름다운 추억만 자리하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