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꽤 쌀쌀하다. 하지만 날씨가 너무 맑고 깨끗하다. 곳곳에 보이는 나무들은 채색옷으로 갈아입었다.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런 날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거리의 가로수의 머리에는 붉은 물로 염색하였다. 보기가 싫지는 않다. 오늘은 “讀書破萬卷(독서파만권)”이란 말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讀書破萬卷下筆如有神(독서파만권하필유여신)”이란 말이 있다. 만 권의 책을 읽은 후 붓을 들으면 신들린 듯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오히려 조금이라도 책을 읽고자 하는 이에게 부담이 되고 스트레스만 된다. 그러니 이 말을 기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이란 뜻을 잘 음미해 보면 여러 가지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책 만 권을 읽으면, 즉 많은 양의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글을 잘 쓰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책 읽기다. 독서가 밑바탕이 되어 있지 않는데 글쓰기 요령만 익히고 글쓰기 방법만 익힌다고 글을 잘 쓸 수 있겠나? 그럴 수 없다.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이 줄줄 나올 것 아닌가? 책을 많이 읽으면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자기가 선호하는 문체로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치고 글을 못 써 고민하는 이가 있던가?
또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은 목표의식을 가지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책을 평생 만 권을 읽겠다, 아니 책을 많이 읽겠다, 글을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책을 읽겠다고 하는 목표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책을 꼭 만 권 읽어야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 나름대로 책 읽기에 대한 목표가 세워지면 된다.
젊을 때는 만 권의 목표를 가져볼 만하다. 왜냐하면 만 권의 목표달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년 봄 농소중 교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지금도 울산 교육발전을 위해 애쓰시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계시는 훌륭하신 분을 만나 뵌 적이 있다. 그분께서는 한때 젊었을 때는 1년에 200권의 책을 읽었다고 하셨고 지금도 책을 읽지 않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다고 하셨다.
1년에 200권 읽으면 50년이면 가능하다. 그분의 연세를 보아하니 가능할 것 같았다. 이렇게 큰 인물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목표를 크게 가져도 된다. 하지만 그게 부담이 되어 오히려 책을 읽는데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책 읽기에 대한 목표를 세우면 된다. 1년에 1권도 좋다. 매달 한 권씩 1년에 12권도 좋다. 1년에 100권도 좋고, 200권도 좋다. 이런 물량적 목표가 자기를 분발하게 한다. 자기의 목표가 책 읽기에 힘이 된다. 그러니 목표를 분명히 가져야 한다.
또 나는 글을 잘 쓸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나는 말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면 나의 가치관이 확립될 때까지, 큰 인물이 될 때까지, 아니면 고귀한 인품을 갖춘 사람이 될 때까지, 아니면 진리의 깨달음이 있을 때까지 책을 읽겠다고 하는 목표도 필요하리라 본다.
그 다음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의 의미 속에는 다독(多讀)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독파(讀破)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 말인데 이 말의 뜻은 많은 분량의 책이나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글을 막힘이 없이 죽 내려 읽거나 책을 끝까지 남김없이 다 읽는다는 말이다. 독파라는 말은 다독의 한 방법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다 읽지 못하고, 한 권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다독의 훈련을 쌓아야 한다. 한 편의 글을 중간에 쉬지 않고 끝까지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 편의 짧은 단편소설을 끝까지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는 연습이 필요하다.
그리고 독서파만권(讀書破萬卷)의 의미 속에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독파(讀破)라는 말이 내가 읽고 있는 책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으라는 뜻이다. 그러니 나에게 유익이 되고, 가치가 있고, 도움이 되는 책이면 수십 번, 수백 번 읽는 것도 좋다. 쾌감을 누릴 때까지. 유쾌,상쾌,통쾌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