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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소풍 가는 아이들처럼 살아가자

2008년 11월 13일, 우리 학교 전교생은 광주로 도시체험학습을 갔습니다.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 맛있는 도시락과 간식을 준비하고 공부하러 가는 아이들은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지요.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 깨는 체험학습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농촌에서 자라는 아이들이라 도시의 번화한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생소한 풍경에 질문도 많아지는 나들이 길이었습니다. 우리 2학년은 이번 도시체험학습이 교육과정과 연계가 잘 되어서 매우 뜻깊은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바른생활 시간에 배우는 교통표지판 알아보기, 교통신호등 지키기를 비롯하여 지하철 타 보기, 전시장에 가서 관람 질서 배우기를 비롯하여 아름다운 가을 단풍잎을 주워 가을 나무 꾸미기 등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글감이 풍부해져서 아이들의 일기장이 어느 날보다 더 길어지고 내용도 풍성하여 참 즐거웠답니다.

'빌딩'이라는 단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좋아하는 모습, 지하철을 타며 신기하다는 표정,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건축디자인 축제를 보며 눈이 커졌습니다. 손톱만한 작은 집, 신소재를 활용하여 만든 다양한 건축물이 건축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축소판으로 만들어져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으신 김대중 대통령의 각종 기록물과 사진첩 옥중생활, 활동 모습을 관람하며 참 좋아했습니다. 이제 겨우 2학년이라 이미 임기가 끝난 예전 대통령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그분의 업적을 기념하며 이름을 따서 만든 국제적인 회의장으로 거듭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나라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으로 좋아했답니다. 특히 옥중에서도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했다는 모습에 감동했다며 어려운 일이 생겨도 참고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쓴 아이들의 일기에는 새로운 각오가 넘쳤답니다.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생활 속에서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체험학습에서 아이들의 앎에 대한 눈높이는 어른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아집니다. 관람 질서를 지키려고 목소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모습, 쓰레기를 스스로 처리하는 모습,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배움을 실천하는 모습이 참 대견스러웠답니다.

금남로의 예술의 거리를 걸으며 좋은 그림과 조각, 건축물, 시화, 도자기,예쁘게 꾸며진 아담한 가게들도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지요. 무심코 지나치는 돌덩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조각가의 솜씨에 매료되어 탄성을 지르며 감탄하는 모습은 바로 '앎의 기쁨'이었겠지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의 모습에서 계절의 변화를 배우는 슬기로운 생활, 번잡한 도로를 걸으며 교통질서를 지키는 바른생활, 가져온 음식을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음식의 고마움과 배려를 배웠습니다. 예술품을 감상하는 미적체험학습으로 예민한 감수성을 기르고 정신을 고양시키는 가을 여행을 한 것입니다. 이제 이 아이들이 더 자라면, 수학여행을 하고 배낭여행이나 해외연수를 하며 새로운 풍경과 시각으로 세상을 향한 소풍길을 스스로 걸을 것입니다.

삶을 소풍처럼 살다가 죽음을 '하늘로 돌아감'으로 여기었던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나, '천지란 만물이 잠시 머무는 여관이요, 세월이란 늘 있는 길손이라.(天地者萬物之逆旅 光陰者百代之過客 )'라고 한 李白의 시를 생각하면 우리 삶은 날마다 소풍인 셈입니다. 소풍나온 삶임을 잠시 잊고 살 뿐이지요.

따지고 보면 인간이 이 우주에 소풍나온 출발점은 우주 탄생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찰나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우주 탄생 이후 지금까지의 역사를 1년으로 잡는다면 빅뱅이 1월 1일, 은하의 탄생은 4월 1일, 태양계의 형성은 9월 9일에 일어난 셈이 된다고 합니다. 이후 12월 19일에 최초의 어류가 탄생하였고 12월 28일에 공룡이 절멸하였으며 인류의 역사는 모두 12월 31일 밤 22시 30분에 시작되었답니다.

1년의 세월 중 불과 1시간 30분간을 인류가 우주에 존재해 온 것이라고 하니 어찌 인간만이 이 우주의 주인인 것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한 개개인의 삶이 220일 동안 학교 생활 중에서 하루, 이틀 나가는 소풍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도시체험학습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져서 나 아닌 다른 동물과 식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물안 개구리의 삶을 벗어나 보다 너른 인식의 단계로 도약하여 지혜를 갖추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나 거창한 바람일까요?

모든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결실을 이루고 되돌아가는 것이 하늘의 법칙임을 떨어진 단풍잎이 보여주고 가을 열매들이 말없이 보여주는 계절입니다. 체험학습을 다녀온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글과 그림을 곁들인 체험학습보고서를 쓰게 합니다. 체험학습을 다녀올 때마다 한 뼘씩 자라는 우리 아이들의 영혼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띄어쓰기 하나 틀리지 않고 예쁜 글씨로 깨달음을 적은 은비, 자신도 커서 김대중 대통령처럼 '은지홀'을 반들겠다는 은지, 우체국에서 하는 일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인재, 교통규칙을 지키지 않고 횡단보도를 한가하게 걷는 할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는 현민이, 김대중 대통령처럼 훌륭한 일을 하고 싶다는 준희, 지하철과 지하상가를 처음 보았다며 신기한 것들을 잔뜩 써 놓은 문경이.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장면을 보았건만 생각하고 느낀 것은 다 달랐습니다.

날마다 소풍 가는 아이처럼 호기심의 더듬이를 돋우고 학교 생활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침의 방법을 늘 생각해야겠습니다. 교실에 새로 들어온 금붕어 여섯 마리를 보며 날마다 다가가서 관찰하는 모습, 새로운 건강체조 하나만 가르쳐 줘도 재미있다며 또 하자고 조르는 이 아이들처럼 나도 날마다 감동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날마다 소풍 가는 아이들 마음으로 아이들처럼 살 수 있기를 나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봅니다.  왜냐하면, 인생이란 소풍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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