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19일. 오늘 아침 세상은 참 깨끗했습니다. 출근 길에 올려다 본 월출산은 그야말로 비경이었습니다. 눈꽃을 피운 나무들, 하얀 망토를 쓴 집들도 모두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한 순간에 저렇듯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자연이 그린 풍경화를 보며 그저 감탄만 나왔습니다.
요즈음 인간 세상을 드리우고 있는 무거운 이야기나 소식들도 한 순간에 덮을 수 있는 붓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고 아름다은 소식 앞에서도 색안경을 끼고 상처를 주며 서로를 할퀴는 세상의 눈들이 무서운 요즈음이니까요.
크리스마스 이브인 것처럼 온 세상이 깨끗한 오늘 아침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잠시 '자유'를 주고 싶었습니다.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자동적으로 독서에 몰입하는 우리 반 아이들의 눈도 오늘만은 창밖을 자주 내다보았습니다.
"얘들아, 아름다운 눈꽃을 많이 보았니? " "예, 선생님. 참 예뻐요!" "그럼, 오늘 아침 독서는 눈밭에서 할까? 조금 있으면 눈이 녹아버리니까 눈밭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 시간 줄까?" "예,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와, 신난다!"
첫눈 오는 날, 출근길에 고생하던 기억이 먼저가 되어버린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저 아이들처럼 저렇게 단순하게 기뻐하고 싶었습니다. 첫눈 오는 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오래 전 학교에서 있었던 풍경입니다. 벌써 15년이나 지나버렸건만 어제 일처럼 또렷한 풍경입니다.
눈이 많이 와서 늦었던 출근에 가슴을 졸였는데 학교에 들어가니 운동장 한가운데 대형 그림과 함께 써저 있던 글씨에 가슴이 먹먹했지요. 그걸 기획한 아이들이 가장 내 속을 썩이고 공부하기 싫어하며 말썽을 부린 아이들이었다는 것에 더 감동했었지요.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눈밭에 초대형으로 써져 있던 멘트를 3층의 우리 교실에서 내려다보면서 행복해 했던 기억. 덕분에 나는 가장 인기있는 선생님 소리를 하루 종일 들었지요. 부럽다는 인사와 함께.
참 많이도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아이들. 아니 아이들이 힘들게 한 게 아니라 내 지도력이 부족했다고 고백해야 올바른 표현이겠지요. 6학년 35명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은 유별났습니다. 학기 중에 가출을 결심한 아이 소식을 미리 알고 설득하여 막아내며 가슴을 쓸어내렸고 다른 친구들을 왕따시킨 여학생을 발견하여 몇 달간 지도하며 힘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온 여자 아이가 전체 남학생 아이들을 나 몰래 때리고 힘들게 한 일을 찾아내 지도하며 보낸 시간. 상처받은 아이들이 다시 상처를 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마니또'를 만들어 비밀리에 다른 친구를 돕게 하던 일, 한 달에 한 번씩 설문지를 주며 자신을 괴롭히거나 잘 해 준 친구를 지도하거나 칭찬해 주며 화목한 학급을 만드는 일이 학력 향상보다 더 시급했었지요.
그때는 중학교 반 배치고사를 보고 학교별로 입학 성적을 공개하던 때였습니다. 6학년 담임선생님은 기타 잡무에서 최대한 배려하여 주며 오직 학업성취에 매달리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달이 학력 평가를 보고 매달 성적이 우수한 어린이에게는 상을 주던 시절이라 아이들도 선생님도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참 많았습니다. 시험 성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반이나, 아이들은 늘 상처를 받곤 했지요. 그러다보니 시험 위주의 학교 풍토가 되어서 잠재적교육과정에 문제가 생기곤 했습니다.
입시위주의 학교 문화에서는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았습니다. 이제 그 아이들은 벌써 살림을 꾸리고 직장 생활을 하는 어른들이 다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도 오늘처럼 첫눈이 온 날, 운동장에 나가서 마음고생 시킨 선생님께 미안해서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그 날의 추억을 떠올릴까요?
첫눈이 온 오늘 아침 나는 내 속을 썩이면서도 나를 감동시켰던 그 아이들을 마음 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운동장에 나가 즐겁게 눈사람을 만드는 우리 반을 바라보며 어디서든 건강하게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빌고 있었습니다. 세상 살아가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저 눈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씻어버리고 다시 우뚝 서서 열심히 살아가길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