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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실권없는 대교협, 대학이 비웃는다

고려대가 지난달 수시 2학기 전형에서 고교등급제를 적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1단계 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내신) 성적만이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내신 등급이 좋은 일반고 학생들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등급이 나쁜 특목고 학생들이 대거 합격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내신 등급이 상위권에 속해 당연히 1단계 전형에 통과할 것으로 기대한 학생이 탈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문제가 된 고려대 수시 2-2전형을 살펴보면 1단계에서 모집정원의 15~17배수를 학생부로 선발한 후, 2단계에서 우선선발로 논술 100%를 적용하여 모집정원의 50%를 선발한다. 나머지 50%는 일반선발로 학생부 40%와 논술 60%를 적용하여 선발한다. 이는 고려대 수시 2-2전형이 사실상 논술에 의해 합격자가 가려진다는 것으로 뒤집어보면 학력이 높은 특목고 학생들을 1단계에서 최대한 합격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과부는 대입업무를 대교협에 넘긴 상황에서 개입의 여지가 없다며 발을 뺀 상태다. 문제는 올해부터 입시감독권을 넘겨받은 대교협이 실권이 없다는 점이다. 고교등급제 의혹을 받고 있는 고려대에 대해서도 대교협 이사회에서 소명자료 제출을 결의한 뒤 수 차례 제출을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고려대로서도 소명자료 제출이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

고교등급제 의혹을 받고 있는 고려대와 마찬가지로 한국외국어대도 ‘수시2-1 외대프런티어Ⅰ 전형’ 논술고사에서 인문·자연계 모두 영어제시문이 등장했고 자연계 논술에서는 제시된 함수 그래프를 이용해 값을 구하면서 풀이과정도 함께 쓸 것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한 바 있다. 경희대, 숙명여대도 자연계 수시모집 논술전형에 수학 풀이과정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했다. 긴급 소집된 대교협 논술연구회에서 이들 대학의 본고사형 논술문항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으나 마땅한 제재 수단이 없어 실효성있는 방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미 논술가이드라인이 폐지된 상태에서 제재 방안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당시부터 대입자율화를 명분으로 정부가 대입업무에서 손을 덴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입시업무를 넘겨받은 대교협은 국가의 공적 조직이 아니라 대학총장간의 의견 조율을 위한 협의체라는 점에서 대학입시라는 공적업무를 추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에따라 국회에서 대교협법을 손질하여 실질적인 관리감독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직 가시적으로 결정된 내용은 없다.

입시와 관련하여 정부의 규제를 받을 때는 대학들마다 한목소리로 자율화를 외친 바 있다. 그런데 막상 자율이 주어지고보니 대학의 사회적 책무에 따른 고민보다는 우수 학생을 선점하기 위한 방법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고려대나 외국어대, 경희대, 숙대 등도 바로 그와같은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사립대는 학생부 선발에 따른 구체적인 기준을 공개하지 않아 일선 고교에서 진학지도를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4년에도 고려대를 비롯한 서울시내 몇몇 대학이 고급등급제를 활용하여 신입생을 선발한 일이 있다. 당시 고교등급제를 실시한 것으로 드러난 대학들은 교육부의 감사와 함께 행․재정적 불이익을 받고서야 이를 시정했다. 그런데 현재의 대교협은 지도감독에 따른 권한이 없어 사실상 대학입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정부는 대교협법을 하루 속히 개정하여 지도감독에 따른 권한을 부여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과거처럼 입시업무를 교과부에서 맡는 것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변하고 있는 대학입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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