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교무실 복도에서 들려오는 인사소리가 우렁차다. 인사소리만 들으면 미국의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으나 여기는 엄연히 한국의 학교, 그것도 입시 경쟁이 치열한 인문계 고등학교다.
‘미스터 보노’는 올 8월에 필자의 학교로 부임한 원어민 교사다. 그의 첫인상은 한번만 보고도 그대로 마음에 각인될 정도로 무척 매력적이다. 작은 키에 불룩 나온 배는 알맞게 익은 붕어빵을 연상하는 듯 하고 뒤뚱 뒤뚱 걷는 모습은 마치 어미 오리를 따라나선 새끼 오리 같다.
처음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약간은 우스꽝스런 모습 때문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으나 차츰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노의 특징은 인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출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보노의 힘찬 인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선생님께 인사하는 것처럼 씩씩하고 우렁차다. 간단하게 목례를 하거나 안부를 묻는 수준으로 가볍게 인사하는 방법에 익숙했던 선생님들께는 색다른 풍경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다년 간 근무했다는 보노는 학생들에게도 무척 자상하다. 자신이 가르치던 그렇지 않던 간에 마주치는 학생에게는 무조건 인사를 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교가가 먼저 말을 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차츰 보노의 진심을 확인하면서 먼저 인사를 하며 다가가는 등 마치 친구처럼 격의없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보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생님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먼저 자판기 커피를 권하기고 하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익살스런 표정에 손짓, 발짓까지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교직원 식당에서 하는 점심 식사도 김치와 고추장 등 낯선 이국 음식이지만 즐거운 모습으로 식사하기 위해 애쓴다.
교사로서 보노의 진가는 무엇보다도 수업지도에 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책을 찾아보고 다양한 자료를 만들어 활용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한 수업이니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보노도 제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려는 듯 매시간 열정을 다해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수업일기를 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내용을 일기 형태로 적어가면서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질문을 했던 부분은 반드시 관련 내용을 찾아서 정리하고 다음 날 수업 준비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미 지나간 수업은 차치하고 이어질 수업만 생각하는 한국의 교사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보노를 지켜보면서 왜 미국이 세계 최고의 교육 선진국인가 하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치열한 입시 경쟁에 파묻혀 참다운 교사상의 의미마저 퇴색해가는 시점에서 교사는 어떤 자세로 학생을 가르쳐야 하는 지 그 해답을 원어민 교사 보노에게서 찾아볼 수 있었다. 교사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소임은 학생들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소통할 수 있어야 하며 또 가르치는데 있어 헌신과 열정으로 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되고 있는 미국의 교원평가제도 따지고 보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달라는 사회적 합의에 다름아닐 것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보노같은 선생님이 많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나라도 내년부터 교원평가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교사상을 원할 것인지 걱정도 되지만 그 해답은 아마도 보노에게서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