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는 배움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배우는 것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배움 그 자체가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논어의 학이편에서 가장 첫머리에 내세운 것이 바로 배움(學)이다.
배움보다 앞세울 것이 없다. 배움보다 더 중요시할 것도 없다. 배움 자체가 삶이고 배움 자체가 삶에 행복을 준다. 살아서 배움을 제대로 못하면 죽어서도 배움을 내세운다. 배우지 못해 한이 진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學生’이라는 표현을 써서 배움을 계속하기를 바란다.
그만큼 배움은 중요하다. 배움 그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기쁨을 가져다 준다.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하셨다. 학문을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반문법은 언제나 강조하는 의미를 지닌다. 그냥 기쁘다고 하지 않고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물으셨다. 동의를 구하셨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다 그러하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니 배움은 계속 되어야 한다. 방학이라고 해서 배움이 멈춰서는 안 된다. 배움은 중도에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배움을 하면서 그 속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배운 것을 복습하면 기뻐진다고 하셨다. 복습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 복습을 하면 가르친 것이 깨달아질 것이니 기쁨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
배운 것을 복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것은 익히는 것도 또한 필요하다. 외우기 공부 자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기본이 되고 골격이 되는 것을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 있지 않다면 그 다음 아무런 진전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기본이 되는 것은 외우기도 함께 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께서는 “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라고 하셨다. 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셨다. 여기서 친구란 어떤 친구를 말하는가? 여기의 친구는 배움이 있는 친구를 말한다. 자기에게 배움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배움에 깨우침을 줄 수 있는 친구를 말한다. 그냥 술친구, 말친구가 아니다. 어떻게 알 수 있나? 이 글이 논어의 학이편에 나와 있고 배움에 관한 글 다음에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배우는 학생은 언제나 배우는 학생들과 가까이 친한다. 모르는 것 있으면 가르쳐 줄 수 있는 친구를 원한다. 선생님에게서 해결되지 않으면 자기 또래 친구들로부터 해결받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러기에 언제나 배움에 몰두하면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면 친구를 찾거나 찾아오게 하는 것이 좋은 공부방법의 아닐까 싶다.
그 다음 이어지는 문장이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아-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고 하셨다. 남이(人)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溫)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라고 하셨다.
여기서 무엇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말하나? 자신이 열심히 배우고 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배워 많은 것을 알고 있고 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溫(온)을 ‘성내다’로 해석을 하고 있고 당연하게 여겨 왔다. 하지만 여기서 溫(온)은 ‘부끄럽다’,‘서운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주위의 사람들이, 남들이 내가 최선을 다해 배우고 익히고 해도 알아주지 않으니 얼마나 서운하고 부끄럽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배움에 몰두하면 머지않아 학식(學識)과 덕행(德行)이 높은 사람, 즉 군자(君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남을 의식하지 말고 꾸준하게 겨울방학을 오직 배움에 투자하고 배움에서 즐거움을 찾고 배움에서 행복을 찾고 배우는 이들과의 만남이 종종 이루어져서 장차 학식과 덕행이 높은 아름다운 인물로 자라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