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학이편에 보면 증자(曾子)가 날마다 세 가지에 대해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매일 자신을 반성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반성이 있어야 자신의 현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반성이 없이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증자(曾子)가 무엇을 반성하였을까? 자신의 학문에 대한 세 가지 반성이었다. 하나가 “爲人謀而不忠乎아-위인모이불충호)이다.” 즉 사람(남)을 위하여 꾀함에 충실하지 못했는가?라는 반성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여기서 人은 남을 말하는데 배움을 받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증자는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 있는데 배우는 제자들을 위해서 꾀함(謀)에 충실했는가?라는 뜻이다.
謀(모)의 뜻을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謀는 꾀하다고 하기보다 ‘묻고, 살피고, 의논하고, 상의하고, 모이고, 접촉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배우는 자에게 묻고, 살피고, 의논하고, 상의하고, 모이고 함께 접촉하고 하는 교수-학습의 활동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忠은 충성하다의 뜻도 있지만 ‘정성스럽다’의 뜻이 있다.
그러므로 첫 번째의 반성은 ‘배우는 자를 위하여 가르침에 정성스럽게 하였는가? 하지 않았는가? 라고 하는 자기반성인 것이다. 가르치는 자의 반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교수-학습의 활동을 성실하게, 정성스럽게, 충실하게 하기 위한 자기반성은 매일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다음으로 반성하는 것은 “與朋友交而不信乎아.-여붕우교이불신호)이다. 즉 ‘벗들과 사귀는데 신의를 다하였는가?’이다. 이것도 배움에 초점을 맞춰 해석을 해 볼 수 있다. 여기서 붕우(朋友)는 가르침과 배움을 함께 하는 친구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함께 가르치는 친구 선생님들이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친구 선생님들이다.
또 交(교)는 단순히 교제하고 사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 서로 오고 가고, 주고받고, 서로 맞대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일에 신의를 잃지 않았나? 의 반성이다. 信(신)은 신의라기보다 ‘성실하다, 확실하다’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니 증자의 두 번째의 반성은 ‘가르치는 친구 선생님들끼리 오고가면서 문제되는 것을 주고받고 얼굴을 맞대어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일에 성실하게 하였는가?’에 대한 반성이라 하겠다. 즉 동료장학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세 번째 반성은 “傳不習乎아-전불습호”이다. 전하여 준 것을 익히지 않음은 없는가이다. 현인의 저서와 고서와, 경서의 주해 등을 배워오면서 확실하게 익히지 못한 것이 없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가르치는 자가 잘못 익혀 두었다면 그것을 배우는 이들에게 어떻게 바르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에 대한 반성이다. 전수 받은 가르침을 반복해서 익힘에 대한 자신의 반성이라 하겠다. 즉 불습(不習)에 대한 반성이다. 가르치는 자가 가르치는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익히지 못하면 가르침이 어찌 되겠는가?
이렇게 증자는 반성에 대한 내용이 모두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반성임을 알 수가 있다. 첫째가 ‘정성을 다해 가르쳤나? 교수-학습 활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대한 반성이고 둘째가 배움에 있어 동료장학이 잘 이루어지고 있느냐에 대한 반성이며 셋째가 자기 연찬, 자기 연구에 대한 반성이라 하겠다. 증자와 같이 교수-학습에 대한 반성이 매일 이루어진다면 정말 아름답고 신뢰받는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겨울방학을 통해 증자의 반성을 토대로 지나간 한 해 동안 교수-학습의 활동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고 증자의 반성이 우리 선생님들의 반성 내용이 되면 참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