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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서울대 합격, 공교육만으로 충분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휴대전화를 들었다. 입시를 담당하는 선생님께 합격 여부부터 물었다. 곧바로 수화기에서 “선생님, 기준이 합격했어요!”라는 말이 울려나왔다. 그동안 마음을 졸였던 것이 봄눈 녹득 한꺼번에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래, 결국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그동안 어려운 과정속에서 선생님을 믿고 묵묵히 따라준 기준이가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3년전 입학식 때의 일이다. 내가 담임을 맡고 있는 반에 배정된 학생들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이제 갓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올라왔기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앳된 모습이었으나 오직 한 아이만이 유별나다싶을 정도로 성숙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를 외모만으로 판단한다면 고등학교 신입생이 아니라 차라리 졸업생이라 하는 편이 맞을 정도로 성숙해 보였다. 아이의 이름은 기준이었다.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파악하고 싶어 학년 초부터 상담에 들어갔다. 저마다 목표가 있었고 또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드디어 기준이 차례가 되었다. 기준이의 입학성적은 그다지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학급에서 상위권에 속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띌 정도로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다. 기준이는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다른 아이들처럼 과외나 학원을 다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규수업에 보충수업 그리고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야간자율학습에 아이들은 조금씩 지쳐가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 경험해보지 않은 높은 학습 강도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게다가 생각처럼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학부모들부터 조바심이 나서 자녀들을 과외나 학원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준이는 그럴 형편도 되지 않았으니 그저 학교를 믿고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준이의 성적은 조금씩 향상되더니 1학년을 마칠 때 쯤에는 학급에서도 1등을 다툴 정도가 되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이지 2학년에 진급해서도 인문계열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평소 자신의 목표였던 사범대 진학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2학년을 무사히 마치고 3학년에 진급해서는 더욱 분발하는 모습이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서 날씨가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입시철이 본격적으로 찾아왔다. 긴장감 속에 수능시험을 마쳤고 기준이는 예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그 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서울대 수시모집에 떨어진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서울대 정시모집에 다시 한번 도전하겠다며 원서를 냈다.

수능성적으로 사정하는 1단계는 무사히 통과했으나 논술이 당락의 핵심 변수인 2단계가 문제였다. 대도시 학생이라면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논술 학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으나 기준이의 처지는 그렇지 못했다. 비록 여러 가지 상황이 열악했지만 선생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기준이의 마음가짐이 기특하기도 해서 학교에서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주말도 없이 계속된 강행군이었지만 조금씩 향상되는 글을 보면서 희망을 찾았다. 그렇게 해서 시험을 치렀고 결과는 합격(서울대 국어교육과)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에 의존해야 명문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으나 기준이는 이같은 선입견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온전히 학교교육만으로 당당히 서울대에 합격했다. 기준이는 절대로 특이한 학생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다만 다른 학생과 차이가 있다면 학교와 선생님을 믿고 따랐다는 점이다. 인간승리를 일궈낸 기준이의 사례를 보면서 공교육의 위상도 결국은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신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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