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 도서관 양지바른 화단에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수선화가 삐죽삐죽 초록의 얼굴을 내밀었다. 교실에서 마냥 움츠리고 있던 아이들도 교정까지 나와 공놀이를 하며 몸을 풀고 있다. 화창한 봄날 아이들의 밝은 표정과 싱싱한 웃음이 어우러진 교정은 바야흐로 꽃피는 봄이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왔음을 알리고 있다.
5교시 차임벨이 울렸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2학년 3반 문학수업에 들어갔다. 방금 식사를 마친 시간이라 식곤증과 야자에 지친 아이들이 여기저기 책상 위에 쓰러져 잠을 자고 있다. 순간 마음이 언짢아진다. '아니 이 녀석들이 새학년이 시작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긴장이 풀려 잠을 잔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엄숙한 표정으로 일장 훈시에 들어갔다.
"여러분,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살고 싶으면 기존의 생각과 행동을 고쳐야 합니다. 2학년에 진급해서도 1학년 때의 생각과 행동에 그대로 빠져있다면 여러분들의 장래는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 없습니다. 새로운 미래는 과거의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학년 때의 나태한 생활을 반성하지 않고는 절대로 새로운 2학년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노력과 욕심이란 말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마음 편히 살려면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욕심만 많으면 고통스럽습니다. 따라서 노력하지 않으려면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살아보니까 욕심을 버리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선생님도 대학 4학년 때에는 그저 취직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취직이 되고 나니 좋은 집도 갖고 싶고 좋은 차도 갖고 싶더군요. 이처럼 욕심은 마음대로 제어가 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노력은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습니다.”
흥분한 나머지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또 한가지, 우리들의 가장 큰 병폐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작심삼일입니다. 처음에는 너나없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가도 채 사흘을 넘기지 못합니다. 그것은 끈기가 없고 타성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2학년에서도 역시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반드시 여러분의 손으로 작심삼일을 끝장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내 훈시를 경청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감동적인 연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자화자찬의 감상에 한껏 도취되어 있을 때 갑자기 엎드려 있던 한 녀석이 불쑥 얼굴을 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오늘이 개학한지 5일째거든요. 그러니 잠을 자도 되죠?"
"와하하∼"
아이들 사이에서 터지는 웃음소리. 그래, 웃자 웃어버리자. 웃음은 경계와 대결을 무너뜨리는 평화의 선물이니 이 시간 실컷 웃고 다시 정신차려 이 찬란한 봄을 이겨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