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규원가'를 공부하다가 경기도 광주군에 있다는 허난설헌의 묘비명을 읽게 되었습니다.
굴종만이 강요된 질곡의 생활에 숨막혀 자취도 없이 왔다가 사라져간 이 땅의 여성들 틈에서도 부인은 정녕 우뚝하게 섰구나.
이 묘비명만으로도 '규원가'의 저자인 허난설헌의 삶이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되었습니다.
허난설헌은 정승을 지낸 허엽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은 매우 유복하게 지냈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은 당시로써는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들이어서 허난설헌을 여자라고 차별하지 않고 글과 학문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난설헌 또한 하나를 배우면 열을 깨우치는 머리가 아주 총명한 소녀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총명함이 오히려 난설헌을 불행의 늪에 빠뜨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로 봐서는 여자가 글을 배우고 시를 짓고 명석한 머리를 가졌다는 것은 큰 허물이 되었던 듯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그 능력을 발휘할 사회적 여건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열다섯 살에 김성립이란 남자와 결혼했는데 사이가 좋지 못했다고 합니다. 글쎄 남자가 좀 옹졸했는지 자기보다 출중한 글재주를 가진 아내를 멀리했다는군요. 그래서 거의 인생의 절반을 기생집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때 지어진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규원가'랍니다.
남편이 싫어하니 덩달아 시어머니의 구박도 극심했다고 합니다. 난설헌이 밤새도록 지은 시를 시어머니가 새벽에 와서 빼앗아서는 전부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불행은 쌍으로 온다더니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던 두 아이마저 갑자기 비명횡사하고 맙니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었고
올해는 또 사랑하는 아들을 여의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의 땅이여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 보고 섰구나.
백양나무 숲 쓸쓸한 바람…
도깨비 불빛은 숲 속에서 번쩍이는데
지전을 뿌려서 너희의 혼을 부르고
너희 무덤에 술 부어 제사지낸다.
아, 너희 남매 가엾은 혼은
생전처럼 밤마다 정답게 놀고 있으니
이제 또다시 아기를 낳는다 해도
어찌 능히 무사히 기를 수 있으랴.
하염없이 황천의 노래 부르며
통곡과 피눈물 울며 삼키리.
- 허난설헌의 '자식을 애곡함'이란 시 중에서 -
이것을 본 허균은 "살아서는 불행하더니 이제 죽어서도 제사를 받들어줄 아들 하나 없구나."라며 통곡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해 주던 남동생 허균도 역모에 몰려 능지처참을 당하고 집안은 완전 풍비박산이 납니다. 참으로 박복한 여인이지요.
결국, 이런저런 불행이 마음의 병으로 남아 허난설헌은 스물일곱이란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고 맙니다.
허난설헌은 눈을 감으며 세 가지를 원망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하필이면 조선 땅에 태어났는가, 조선 땅에 태어나려면 남자로 태어날 것이지 왜 하필 천대받는 여자로 태어났는가, 마지막으로 수많은 남자를 놔두고 왜 하필 김성립처럼 무능하고 바람기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가.
이 세 가지를 한으로 남기며 이 땅에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여성이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동안 자신이 생명처럼 여겨왔던 주옥같은 작품들을 모두 불에 태우라고 유언한 뒤 숨을 거둡니다. 그때가 1589년 3월 19일 백목련이 막 꽃망울을 피우던 초봄 무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