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손’이라는 동시를 4학년에서 배운다. 교사용 지도서에 시의 전문이 실려 있고 교과서에는 삽화만 있다. 교사용 지도서를 실물 화상기를 이용해 보여주면서 읽어주었다. 시적 감수성이 우수한 친구가 있나 싶어 “지금 이 시 한 번 듣고 외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가 욀 수 있단다.
“그래 나와서 한 번 외워봐” 그 작은 입에서 한 번 들은 시가 줄줄 노래가 되어 나온다.
흙 묻힌 손 뒤에 감추고 오다가 영감님을 만났네 “어른 앞에서 뒷짐을 지다니. 허, 고놈 버릇없군.“
흙 묻힌 손 뒤에 감추고 오다가 뒷집 애를 만났네. “얘, 먹을 거냐? 나 좀 다오.”
흙 묻힌 손 뒤에 감추고 오다가 삽사리를 만났네. “뒤에 든 게 돌멩이지? 달아나자 달아나“
언제나 두런 두런, 소근 소근,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우리반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모두가 숙여해진다. 글자 한 자 안 틀리고 외워내는 ○○이에게 보내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이 스타킹 내 보내자” 선생님의 한 마디에 다시 예전으로 돌아온 아이들, ○○이의 마술에서 풀려난다.
○○이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한다. 사연이 참 많은 아이다. 그리고 그 사연만큼이나 눈물도 많고 눈치도 빠른 아이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같은 처지의 아이들과 함께 목사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산단다.
지난 토요일 학교에서 다른 일을 좀 보다가 한 시가 넘은 퇴근 길에 우연히 ○○이를 만났다. “○○아 어디 갔다 오니” “헌이네 집에서 놀다가 집에 가요” “점심 먹었니” “아니 배 안고파요” 배 안 고프다는 이야기만 한다.
‘점심 시간이었는데 왜 자식 친구한테 밥을 먹여서 보내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였다. “그럼 집에 들어가면 밥 챙겨주니” “아니 배 안 고파요”
때가 지나면 밥을 챙겨 달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운 모양인지..... 참 가슴이 에려온다. 눈치가 너무 빤한 아이, 아무것도 모르고 응석 부리기에도 바쁜 나이에 눈치를 살펴야 되는 아이. 네 가슴에 상처를 어떻게 할 거나? 네 아픔을 어떻게 할 거나? 이글을 쓰는 순간에도 ○○이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