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립학교재단의 고유 권한인 교감연수대상자 선정을, 전체 교사들이 직접 선거로 뽑아 재단에 추천키로 합의하는 학교가 하나 둘 생기면서 이 방식의 확산여부에 교육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사학재단과 교사들간의 이런 합의는 서울에서만 10개 학교에 달하지만, 이미 시행을 한 학교의 재단측도 "교장이 공석인 특수한 상황에서의 한시적인 허용이었다"고 밝히고 있어 전반적인 확산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방식은 기존의 교감자격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수대상자 선정과정에서 교사들의 의견을 전폭적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교감(장) 자격제를 폐지하고, 보직이 끝나면 다시 평교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전교조의 선출보직제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의 도입을 주장하는 교사들은 "인사위원회 활성화와 더불어 민주적으로 진일보한 제도"라고 긍정적으로 보는 반면 다른 사립재단측에서는 "특수한 상황의 사학 재단이 교사들의 요구에 밀린 결과"라며 파급 효과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서울에서 교감연수대상자를 전체 교사들이나 인사위원회서 선출해 추천키로 한 학교는 성보고, 청원여중, 청원고, 청원정보고, 서울외고, 동구여중, 동구여상 혜성여고(도입 긍정적 검토), 강동고, 배명고등 10개 학교라는 것이 박정훈 교사(이화외고) 교사의 주장이다.
이 방식을 도입키로 한 서울의 7개 학교는 교감연수대상자를 단수 추천하는 반면, 나머지 3개 학교는 복수 추천키로 했고, 연수 추천 대상도 교직경력 15년을 최소 조건으로 정한 곳이 있는가 하면, 25년을 기준으로 삼는 곳도 있다.
교감이 교장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성보고교는 지난해 8월 교감을 포함한 교사들의 직선으로 3명의 교감연수대상자를 선출한 뒤 재단에 승인을 요청했다가, 1차 이사회에서 부결당하고 2차 이사회(10월 중)에서 승인을 받아, 11월 10일 송 모 교사가 교감으로 임명됐다.
재단측은 "다수결로 교감을 뽑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서 일차 부결했지만, 교장직무대리가 추천해야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교사들이 선호하는 교감을 임명하는 것도 학교운영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행한 단 한번의 한시적인 조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수강 교장직무대리는 "전체 69명의 교사 중에서 전교조 교사가 38명, 교총교사가 3명이었지만, 선출된 3명은 모두 비전교조 교사였고, 임명받은 교감은 비 교원단체 교사였다"고 한다. 성보고는 기존부터 '교장이 추천하는 3명의 교감 후보 중 재단이 한명을 임용'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서울 K 고교는 2005년부터 이 방식을 도입키로 지난 12월에 합의했다. 서재완 교사(수학)는 "교직경력 15년 이상된 교사를 대상으로, 전체 교사의 투표로 1명의 교감연수대상자를 선출키로 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이에 앞서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무기명비밀투표로 소위원회(위원 7명)를 구성해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런 내용을 재단측과 합의했다.
충남의 금산중학교와 금산상고(같은 재단 소속 학교)는 지난해 교감 두명의 퇴직을 앞두고 교감연수대상자 직선·추천을 교장과 합의하고, 재단의 승인 요청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진행을 멈췄다. "교직경력과 선후배 등의 인간관계를 고려해 볼 때 투표해봐야 어차피 예견된 사람들이 선출될 게 뻔한데, 굳이 학교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금산중학교 한 교사의 설명이다.
한편 이 방식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이상덕 전교조 사립위원장과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는 "한번 교감이 되면 다시는 평교사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선출보직제와는 다른 한계를 가지지만, 하향식의 일방적인 인사관행에서 상향식의 의견수렴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진일보한 방식"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반면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재단의 인사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선거를 앞두고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 소지가 많다"는 사립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의 이방원 정책실장은 "잘 가르치는 교사보다 노조와 정치활동에 전념하는 교사가 교감이 돼 교무회의를 관장할 경우, 자연스레 학생들의 학습권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행정전문가들은 "모든 공무원제도가 근무평가제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데, 교감추천 기준에서 '근평'이 제외된다는 것은 혁명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고 서울시교육청의 윤웅섭 정책국장은 "교육 문제는 다수결이 만능이 아니다"며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