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子路問政(자로문정)한대 子曰先之勞之(자왈선지로지)니라 請益(청익)한대 曰無倦(왈무권)이니라” 이 말의 뜻은 ‘자로가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먼저 하고 수고롭게 하라. 자로가 더 가르침을 청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게으름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란 뜻이다.
자로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공자께 정치가 무엇인지 물은 것이다. 그때 공자께서 先之勞之(선지로지)라고 하셨다. ‘먼저 수고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 속에는 정치가들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쳤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先之勞之(선지로지)의 자세가 참 중요한 것 같다. 先之勞之(선지로지)는 본을 보이는 자세다. 교육은 본보이기와 본받기이다. 교육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고 행함으로 본을 보이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닮지만 학생들은 선생님을 닮게 되어 있다. 선생님이 본을 보이지 않고 말로만 하면 그 말은 힘을 잃게 되고 만다.
정치가나 선생님은 본을 보이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본을 보이는 일을 예사로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본을 보이기는 쉽지 않다. 말하기는 쉽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말하기는 천천히 하고 행동은 빨리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엄청 거부감을 주게 될 것이고 선생님에 대한 존경보다 비판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행동을 먼저 보여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본을 먼저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말은 아끼고 행동을 많이 하면 그것이 바로 산교육이 되는 것이다. 선생님이 책을 읽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책은 나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것이니 방학 중에 책을 많이 읽어야지’ 하면 그 영향력은 극히 미미할 뿐이다. 평소에 선생님께서 책을 가까이 하면서 ‘애들아, 책이 나에게 많은 유익을 주고 있어. 책을 읽어야지, 책을 많이 읽어야지’ 하면 학생들은 그 말에 큰 자극을 받아 많은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선생님이 가져야 할 先之勞之(선지로지)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자로는 先之勞之(선지로지)에 대한 대답으로 만족을 하지 못했다. 여기서 배우는 이들은 자로의 더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선생님께서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기보다 내가 알고자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하면 더 깊이 알고자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즉 請益(청익)의 자세인 것이다. 선생님이 짜증을 낼 것 같아 아주 조심스럽게 청한 것과 같이 더욱 알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질문도 조심스럽게 겸손하게 묻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배우는 학생이 가르치는 선생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말은 언제나 조심스럽게, 정중하게 질문하는 자세가 꼭 필요한 것이다.
자로가 더 가르침을 청했을 때 공자께서는 ‘無倦(무권)’을 말씀하셨다. 게으름이 없게 하라고 하셨다. 게으르지 말라고 하셨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가르침에 게을러서는 안 된다. 교재를 연구하는 일에도 게으르면 안 된다. 학습자료를 준비하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교재준비하는 일, 학습자료 만드는 일, 수업하는 일, 틈틈이 학생들 인성지도하는 일 등에 대해 자신이 부지런함이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좋은 정치가가 만들듯이 좋은 교육은 좋은 선생님이 만든다. 좋은 선생님은 무엇보다 먼저 본을 보이는 것이고, 교육하는 일에 게으름을 없이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꿈을 주고 선생님들은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부모님들에게는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