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 한다는 것은 시작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이별한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의지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게 아니지만 만남은 늘 새롭고 이별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어제 종업식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갇혀있던 공간에서 해방된다는 즐거움에 얼굴표정부터 다릅니다. 그저 싱글벙글 합니다. 그래봤자 열흘 남짓밖에 쉬지 못 하고 학교에 나와 딱딱한 의자에 앉아 엉덩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는데도 즐거워합니다. 방학이라는 심리적인 단어가가 아이들을 즐겁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 아이들이 비밀리에 깜짝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짐작도 못하게 말입니다. 7반 아이들은 며칠 전 담임선생님에게 각자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를 쓰며 어떤 어이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스물아홉 개의 촛불을 켜서 교실 바닥에 하트모양을 만들고 모두가 무릎을 꿇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노래를 불러 담임선생님을 감동케 했습니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천하의 병쌤(별명)도 결국 눈물을 글썽였다는 소식이 교내에 퍼져 모두에게 훈훈한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어제는 우리 반 아이들이 비슷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종업식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10년 후, 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적어보도록 한 다음 교무실에서 마지막 일처리를 하고 있는데 반장이 와서 교실에 같이 가자고 합니다.
"선생님, 핫도그 왔어요. 가시게요." "너희들끼리 먹고 있어. 일 좀 하고 갈게." "에이! 아따 하시고 지금 가요."
2학년 마지막 날이라 31명의 아이들에게 햄버거 핫도그와 음료수를 시켜줬습니다. 반장은 함께 가서 먹자며 나와 부담임인 이 선생님의 팔짱을 끼고 가자고 합니다.
"나 햄버거 싫어해. 속도 안 좋고. 그러니 너희끼리 먹고 있어." "그럼 우리 먹는 거 보기라도 하세요. 마지막인데…." "알았다 알았어."
그놈의 마지막이란 말에 반장 손에 끌려 교실에 들어가니 녀석들이 폭죽을 터트리고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칠판엔 담임인 나와 부담임인 이 선생에 대한 글귀가 가득 쓰여 있습니다. 교탁 위엔 작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놨습니다. 가슴이 괜히 뭉클해옵니다. 아이들에게 뭐 해준 게 있다고 이런 대접을 받나 싶으니 미안한 마음이 안개처럼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런 상념에 젖어 있는데 반장과 부반장이 뭔가 가지고 옵니다. 아이들이 나름대로 추렴하여 선물을 준비했다며 풀어보라고 합니다.
여선생인 이 선생에겐 예쁜 블러치를 선물했습니다. 반장이 직접 가슴에 달아줍니다. 내겐 멋진 가죽 장갑을 선물했습니다. 장갑을 끼자 '선생님 잘 어울려요. 매일 끼고 다녀야 해요.' 하면서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선물, 롤링 페이퍼를 열어보라고 합니다. 거기엔 건강하라는 덕담이 가득 써있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있습니다. 평소 건강 때문에 힘들어 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나 봅니다.
페이퍼 속의 글을 읽으며 아이들 하나하나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어떤 아이는 더 신경 써주고, 어떤 아이는 덜 신경 써주고, 어떤 아이에겐 좋은 말을, 어떤 아이에겐 미운 말을 하고, 이따금 아픈 말도 한 것 같아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밀려듭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나에게 또 하나의 배움을 주고 있음을 봅니다. 똑같이 사랑 주고, 똑같이 마음 주고, 잘난 놈 덜 잘난 놈 구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대하고 인정하라고 교훈을 줍니다. 그리고 선생 노릇 제대로 하라고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남은 헤어짐을 가져오고, 헤어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는 게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지요. 아이들과 교사와의 관계도 늘 그런 것 같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3학년이 됩니다. 삼 중에서 인삼과 해삼은 영양도 있고 맛도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고삼은 인고의 삼이기에 모두가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과정임을 압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고3 과정을 잘 이겨내서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꼭 이루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함께 했던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