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공무원을 가리켜 철밥통이라 한다. 한 번 임용되면 커다란 잘못이 없는 한 그 직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계발을 게을리 해도 누가 무어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 모습이 국민들의 눈에는 좋지 않게 보인다.
교원도 국가공무원이다. 학생들이 변하고 학부모들의 요구가 변하고 시대가 급변하건만 교직은 지극히 보수적이다. 변화 수용이 더디다. 변화를 선도해야 하는데 변화를 쫒아가기 바쁘다. 그래서 때론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학교의 기간제 교사 취업, 경쟁이 치열하다. 한 번 ‘불성실’로 낙인 찍히면 재취업이 어렵다. 금방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젊은 기간제 교사들의 교육 열정이 대단하다. 정규교사 못지 않을 뿐더러 그들을 능가하기도 한다.
기간제 교사들은 이력서를 항시 준비하고 있고 자기소개서를 최신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놓는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교장의 면접에서도 준비되어 있는 자세다.
그렇다면 정규교사는? 반성할 점이 있다. 전보교사의 경우, 새학교로 발령통지서 한 장 갖고 방문한다. 이미 근무지를 국가가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학교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은 있지만 그래도 기간제 교사에 비해서는 느긋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 새로운 시도를 하였다. 전보 받아 오는 교사도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여 교감, 교장에게 이메일로 보내는 것이다. 그들을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다. 4∼5년만에 근무지를 새로 옮기면서 교사로서의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자는 것이다.
자기소개서 항목은 5가지로 ▲출생 및 가족사항 그리고 학력, 경력 ▲나의 ‘교육 성공 사례’ 및 취미와 특기, 장단점 ▲인생관과 교육철학 ▲나의 꿈과 소망 또는 ‘나는 이런 교육을 하고 싶다’ ▲교육과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 등이다. 어디까지나 항목은 예시이므로 창의적으로 바꾸어 작성하거나 내용에 맞는 제목을 붙이면 더욱 좋다고 안내했다.
부임교사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이디어를 낸 교장으로서 그것이 제일 궁금하였다. 혹시나 “별 희한한 학교 다 있네?”하며 나올 수 있는 부정적인 반응을 경계하였다. 교장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할까 염려를 하였다.
부임교사들의 공통적인 대답은 “사실 부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면서 ‘교사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고 긍정적으로 답한다. 20년 이상의 교직생활에서 자기 소개서를 써 본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사실 교장으로서 불만스러운 것은 함께 근무할 교사들에 대한 배경 지식 없이 첫 대면을 하면서 호구 조사 하듯 그들을 맞이하는 거였다. 그들의 정체와 내면세계를 알고 대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교장의 뜻을 선의로 해석하고 홈페이지에 안내 탑재된 것을 보고 신속히 작성하여 보내준 전입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필자가 강조하고 있는 생활철학 ‘6적’(긍정적, 능동적, 자율적, 적극적, 교육적, 창의적)이 벌써 통했나 보다.
전입 정규교사가 13명인데 자기소개서 조회 건수는 250회를 넘었다. 이러한 사실이 주위에 입소문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신규 교장으로 승진한 지인에게 이야기 하니 자기도 흔쾌히 받아들여 학교에 적용하겠다고 한다.
공무원, 이젠 철밥통이 아니다. 교원들도 자기 계발을 하지 않으면 교단에 서기 어렵다. 근무지를 옮기면서 자신의 교직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필자의 이번 시도가 교육을 발전시키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새로 부임한 교사들의 자기소개서는 이미 출력해 놓았다. 교장으로서는 그것을 그들의 이해자료로, 그들을 도와주는 자료로 활용하려 한다. 학교 교육력 신장의 일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