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정치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새 학기가 시작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을 맞았다. 까맣게만 느껴지던 그 숱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격렬한 전투를 치르고 난 뒤의 다소 허탈한 느낌이랄까.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큰 시험에 들고 그때마다 치열한 승부를 벌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고3. 모르긴 몰라도 이 시기가 인생을 좌우할 최대 승부처고 그래서 목숨걸고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오죽했으면 ‘고3병’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을까. 고3이 되면 아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한 마디로 잠자는 시간만 빼고는 공부 기계로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고3 과목을 맡은 선생님들은 사실 이런저런 부담이 만만치 않다. 시험을 치를 때마다 전국 대비 과목별 평균과 석차까지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성적이 떨어지는 과목은 교장, 교감은 물론이고 학부모의 눈총까지 받아야 한다. 고3 담임은 부담이 몇 가지 더 얹힌다. 시험볼 때마다 아이들 상담은 물론이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
요즘처럼 대학전형이 복잡하고 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3 담임은 동료 교사들끼리도 서로 맡기를 꺼린다. 일단 고3 담임을 맡으면 일 년 동안은 가정을 포기해야 한다. 고3은 사실상 입시가 끝날 때까지 휴일이 없다. 그저 밤낮없이 아이들 곁에서 지내야하고 혹시 아이들이 한눈 팔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살얼음판 걷듯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지난 2월, 교무분장 발표가 있을 때였다. 고3 담임에 학년 전체를 책임지는 부장까지 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사실 앞이 캄캄했다. 가뜩이나 다루기 힘든 녀석들을 한 학급도 아니고 전체를 통괄한다는 것은 사실 내 능력에 비춰볼 때 과분한 직책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아이들, 선생님이 조금만 허점을 보여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아이들, 게다가 젊은 선생님들을 중심으로 사생활을 중시하는 교단의 풍토 등 넘어야할 난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딱히 방법은 없었다. 오로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저 반복적인 일상에 몸을 맡길 따름이었다. 새벽밥 먹고 출근해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보면 어느덧 자정이 가까워 온다. 정과수업, 보충수업, 야간수업, 야간자율학습 등 기계처럼 정해진 일정은 한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몸은 늘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지만 부장이기에 내색할 수도 없고 그저 정신력으로 버틸 따름이었다.
그랬다. 아이들이 대학에 인생을 걸었듯이 고3 학년부장도 아이들의 진학 결과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입시가 마무리 될 때 쯤이면 소위 일류대 몇 명 보냈느냐로 한 해 농사를 판가름하려는 사회적 통념이 존재하는 한 3학년 부장은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어느 선배의 표현은 적절한지도 모른다.
어제 방학을 했지만 고3 아이들은 내일부터 다시 학교에 나와 공부를 한다. 뜨거운 여름, 아이들은 시든 꽃처럼 교실에 담겨 온 종일 책과 씨름할 일만 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에 대한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