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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가슴이 따뜻한 도전은 아름답다

세상은 학교가 무너졌다고 입을 모은다. 선생은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고, 학생은 교권을 무시한다는 보도가 나온다.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엄청나게 촌지를 주는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졸업식을 앞두고는 학교 근처에 경찰을 배치하며 졸업 후 일탈 행위를 못하게 한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영 딴판이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가 너무 좋다. 졸업식에 저희들 1학년 때 담임을 찾아와서 이별을 아쉬워했다. 2년 전에 담임을 했던 놈들이 작년에도 몰려와서 꽃다발에 케이크까지 안기더니 졸업을 앞두고 눈물을 찍었다. 밖에서 보면 녀석들은 순진하다 못해 바보였을 것이다.

이번 졸업식에 녀석들이 한참 울어대기에 나도 눈물이 나기도 했는데, 자리에 돌아와서는 다시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녀석들이 책상 위에 예쁜 난과 케이크, 그리고 책까지 놓고 갔다.

책은 엄홍길 대장의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이었다. 보통 책은 작가를 먼저 보고, 장르도 소설을 읽는데 치우쳤다. 엄홍길은 전문 작가도 아니고, 책의 내용도 내 취향이 아니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고 놀랐다. 나를 돌아보는 지침서가 되었다.

엄홍길은 히말라야에 도전하기 시작하여 22년 만에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8000미터급 16좌를 정복했다. 그의 성취는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이 책은 엄홍길이 38번의 도전 끝에 18번을 실패하고 20번 성공한 이야기들을 담은 산문집이다.

나는 책에서 산악인 엄홍길을 만난 것이 아니라 가슴이 따뜻한 신사를 만났다. 그는 이 시대의 지식인도 아니고, 경쟁 사회에서 성공을 한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분이 높거나 돈도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꿈을 지니고 묵묵히 자기와 싸우는 사람이었다.

산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여러 명의 등반 동료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순간에도, 설벽에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는 4,50일간에도, 어찌 보면 모두의 마음 저 깊숙한 내면에서 쉼 없이 사투를 벌일, 자신과의 싸움인 것입니다.(p. 97)

그의 말대로 산에 오르는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과의 싸움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 그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도움도 받을 수 없다. 어떠한 시련이 와도 혼자 버텨내야 한다. 그 싸움은 승부도 없다. 통쾌하게 이기는 쾌감도 없지만 멈추면 진다.
 
그러면서도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은 자신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에서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삶의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멈출 수 없는 매력이 여기에 있다.

산악인 엄홍길은 다시 태어나도 히말라야에 또 도전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산을 오르면서 가슴 뛰는 삶을 살았고, 삶의 철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다 보면 그들에게 감동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적은 일당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포터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산 밑에 지은 허름한 집에서 생활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받았거나 풍요로운 살림을 갖춘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삶은 행복이 넘칩니다.(p. 69)

등반을 도와주는 세르파 이야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들은 하루 점심 값 정도밖에 안 되는 돈을 받고 산에 오른다. 등반대와 똑같은 짐을 지고 8000미터를 오른다. 8000미터를 오르는 일은 개인의 힘만으로 절대 불가능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 혼자 이룬다는 생각은 자만이 된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의지하고 도움을 주면서 살아야 한다.

그들은 짐을 나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순수하고 맑은 눈빛만은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문명의 혜택을 받지도 않고, 풍요로운 살림을 갖춘 것도 아닌데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가슴이 따듯하기 때문에 산에 오르면서도 소외받는 이웃에게 마음을 쓴다. 이러한 마음은 다시 자연으로, 그리고 먼저 간 동료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으로 번져온다.




‘설연화’라는 꽃입니다. 히말라야 고지 티베트 지역 만년설산에만 피는 그 꽃은 사람의 힘으로 기를 수 없고, 히말라야의 새들이 먹고 난 배설물에 의해 번식되거나 바람에 꽃씨가 날려 번식됩니다.(p. 38)
똥마저도 버릴 것이 없는 야크, 셰르파, 포터들과 함께 나의 산행에 늘 도움을 주고 운송 수단의 역할을 해 준 것이 야크입니다.(p. 199)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영원한 산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꺼내고, 쓸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옵니다.(p. 83)

그는 책에서 히말라야 등정을 하면서 본 자연을 전하고 있다. 히말라야에서도 꽃이 핀다. 고지에서 살아가는 연약한 꽃의 생존 방식은 생소한 만큼 감동적이다. 셰르파와 포터와 야크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고 있다. 등반하면서 먼저 떠난 동료를 그리워하는 노래는 가슴을 적셔오는 감동이 있다.

그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히말라야에 올랐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떠한 난관에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다. 우리는 그의 정신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정신은 인간만이 가지는 최고의 역량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을 하지 않는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이루려고 한다. 그것은 욕심이 아니라 스스로를 뜨겁게 하는 열정이다.

열정은 성취에 만족하지 않는다. 성취에 다가가는 마음의 고통을 즐긴다. 육체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노력하고 인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늘 전진하기 위해 고통스러워하고, 게으름에 고통스러워한다. 그 고통은 외부에 의한 충격이 아니라 스스로에게서 만들어진다. 언젠가는 도달하고 말겠다는 행복한 고통이 우리를 감동에 젖게 한 것은 아닐까.

그는 산악인이기에 앞서 따뜻한 가슴과 눈물을 가진 인간이었다. 그는 삶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열심히 사는 만큼 정신세계는 부유하고 건강했다. 내면의 깊은 정신은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깊고 넓은 인간의 사랑을 깨우쳐 주는 그의 영혼은 어느 철학인보다 감동적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어떤 산을 올라가고 있는지, 그리고 올라야 할 산은 무엇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선생님이 될 것인가? 나의 내면에 어렴풋이 깜빡이는 삶의 등불을 보았다.

삶의 행로는 순탄하지 않다. 눈보라 몰아치고 거친 상처도 얻게 된다. 삶의 고지를 오르다 보면 좌절하고 눈물도 삼켜야 한다. 엄홍길이 산에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삶의 고비에서 내가 먼저 할 일은 내 자신을 낮추는 일이다.

엄홍길은 자신이 정한 삶의 목표에 묵묵히 도전했다. 그 흔한 경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이루기 힘든 목표를 달성했다. 목표만 달성한 것이 아니라, 넓고 깊은 삶의 정신까지도 만들었다. 나도 정신과 영혼을 더 높이 성장시키는 산행을 하고 싶다. 등산은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것처럼 나도 삶의 산행에 올라야겠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그 오르는 힘든 과정을 즐기는 인생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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