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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쉬운 수능’ 누가 웃을 지 알고는 있나

교과부가 본격적으로 수능 물타기에 나섰다. 교과부는 수능시험 출제를 맡고 있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수능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EBS와 공동으로 ‘수능·EBS 연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EBS 교재의 연계율 70%는 유지하되 문제를 비틀지 않고 쉽게 출제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수능 도입 18년 만에 만점자 비율까지 적시했다. 올해 11월 20일 시행될 2012학년도 수능부터 영역별 만점자가 1%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른 바 ‘물 수능’이 예고되자 고3 학생들은 술렁이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고1이었던 2010학년도의 혼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쉬운 수능’으로 인해 영역별 만점자 비율이 언어 0.24%, 수리 ‘나’형 0.84%, 외국어 0.74%로 변별력 확보에 실패해 엄청난 혼란이 일어난 바 있다. 당시에 입시에 실패한 학생들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 따르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여 13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재수를 택했다. 그런데 영역별 1%의 만점자가 나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는가? 결국 사교육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다.

수능의 목적은 우열을 가리는데 있다. 변별력은 곧 시험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수능이 아무리 국가에서 주관하는 시험이라도 난이도를 놓고 책임지지 못할 말을 쏟아내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지난해에도 교육당국이 EBS 교재 70% 연계를 통해 ‘쉬운 수능’이 될 것이라며 마치 선거공약처럼 언론을 통해 쏟아냈지만 실제로는 공수표만 남발한 꼴이 되고 말았다.

학생의 학습내용에 따른 질적 수준은 시험을 통해 검증된다. 따라서 시험은 기본적인 지식을 확인하는 평이한 문제부터 심층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풀 수 있는 고난도 문제까지 그 비율이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정 비율을 맞추기 위해 문제를 쉽게 출제한다면 가르치거나 배우는 입장에서 기본적인 학습활동에만 치중하지 굳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고차원적인 학습을 할 리 만무하다. 그로 인한 폐해는 재앙에 가깝다. 교육의 질적 수준이 떨어지면 국가경쟁력 하락은 시간 문제다.

답답한 것은 ‘EBS 교재 몰아주기’에 왜 교육당국이 나서느냐는 점이다. 물론 사교육잡기라는 이유는 알고 있다. 그러나 학습의 다양성을 왜곡하여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아넣는 지는 왜 모르는가. 당장 입시를 목전에 둔 고3 학생들 입장부터 따져보자. 1점이 아쉬운 상황에서 수능의 70%가 한 교재에서 나온다면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보려고 하겠는가? 모르긴 해도 아마 EBS 교재를 통째로 외우겠다는 아이까지 나타날 것이다.

쉬운 수능이라고 사교육을 줄인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문제가 쉬우면 오히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여지가 많다. 입시에서 실패하면 운이 없다고 여기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2011학년도 대입에서 자신의 실력에 맞는 대학에 진학한 아이들까지 ‘쉬운 수능’이란 말에 귀가 솔깃해서 ‘반수’를 고민한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지난해 재수생이 15만 5000여명이었는데 올 해는 20만명에 육박할 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 큰 사교육잡기 실패가 어디 있겠는가. 재수생들이 벌떼처럼 몰려드는 기숙학원의 한 달 비용이 얼마인지 교육당국은 아는가. 혹시 셀러리맨의 한 달 봉급이라면 믿겠는가. ‘쉬운 수능’, 누가 웃을 지 다 알고 있는데 교육당국만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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