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많이 읽는 이유는 메말라버린 나의 지식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다. 자주 이야기하지만 책은 지식의 보고다. 책을 읽어야 그럭저럭 남 앞에서 아는 체도 하고, 남과 더불어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거리가 싹튼다. 그리고 책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남의 글쓰기를 기웃거리기 위한 것이다. 옆에서라도 보면 거기에는 못 미치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는 사실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현학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글도 그저 그렇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가 아니다 보니 배울 것이 없다.
그런데도 한비야의 책은 안 읽을 수가 없다. 한비야의 책은 심오한 학문적 지식은 없지만 감동이 있다. 그의 삶은 하나하나가 박제된 지식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가 있다. 작가의 이야기는 감동을 주기도 하고, 삶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천천히 마음을 다독거리며 읽어야 한다.
한비야의 글이 그저 그렇다는 판단도 조심해야 한다. 한비야 글쓰기는 표현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한비야 자신이 글쓰기 전에 말로 해본다고 한 것처럼(내 글쓰기의 비밀, p. 114), 한비야의 글은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실제로 글 곳곳에는 ‘밥맛 없다(p. 238), 다행이라며 웃는다. 웃기는……(p. 245), 세상에……(p. 245), 딴 부인을 얻어 나가버렸다. 나쁜 놈!!!(p. 257)’ 등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투의 언어 표현이 보인다. 이렇게 말하는 듯한 문체와 부드러운 문장이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흔히 어렵게 쓴 글, 수식이 많은 글이 좋은 글처럼 느껴지는데, 편안하고 쉽게 쓰는 글이야 말로 가장 잘 쓰는 글이 아닐까.
가정 먼저 이 책에서 전해주는 감동은 재난 현장에 뛰어가는 한비야의 모습이다.
인도네시아 아체의 쓰나미 현장에서 만난 엄마 잃은 아이들은 마음이 아파 차마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중략) 하루아침에 사라진 엄마 생각을 하며 이렇게 울다가도 조금만 웃긴 이야기를 들으면 눈가에 눈물을 매단 채 웃는 아이들(p. 130).
2학년 교실에 들어가 아침밥을 먹고 온 사람이 있는지 물었더니 마흔일곱 명 중 겨우 다섯 명만 손을 들었다. 나머지 아이들에겐 우리가 점심 급식으로 지원하는 옥수수 죽이 그날의 유일한 음식이라고 했다. 그나마 평일에는 이렇게 한 끼라도 먹을 수 있지만 주말엔 꼼짝없이 물로 배를 채운단다(p. 136).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학교 터, 6백여 명의 여자아이들이 수업을 받다가 고스란히 묻혀버린 곳이다. 이 건물더미 안을 막고 있는 꽃상여보다 화려한 트럭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구호물자가 가득 실려 있고, 각국에서 온 취재진과 지역 및 국제 NGO들도 많이 눈에 띈다(p. 226).
자신의 몸을 돌볼 새도 없이 돌아다닌 결과 ‘갑자기 얼굴과 혀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은 것처럼 왼쪽 얼굴에 감각이 없고, 혀가 굳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p. 119).’는 처지가 되었다. 남을 위해 사는 일에 빠져 자신의 몸을 돌볼 겨를도 없다. 세계의 오지를 뛰어다니며 사랑을 실천하는 한비야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여자의 몸으로 험난한 구호 현장에 뛰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마음은 있어도 힘이 부친다. 재난 현장에 씩씩하게 뛰어가는 힘이 어디서 나올까 궁금했는데, 이번 책에서 알았다. 그것은 그녀를 떠받치고 있는 종교관이었다.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 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 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이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p. 89).
이 시는 작가가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 세웠던 일종의 기도문이다. 한비야를 지지해준 내면의 울림이다. 즉, 작가는 어떤 괴로움, 극한 상황에서도 종교적 힘을 얻어 일어섰다. 긴급 구호 현장에서 비틀거릴 때도 한비야는 하느님을 믿고 노력한다.
특히 한비야는 성숙한 종교관을 지니고 있다. 개방된 신앙은 그의 삶만큼 너그럽고 부드럽다. 실제로 작가는 구호 현장에서 특정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모슬렘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벌일 때도 월드비전의 로고인 별 모양이 십자가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로고를 사용하지 않았다. 재난 현장에서는 세상의 모든 종교와 만나기 때문에 종교를 고집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런 열린 마음은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다. 작가는 불교와 천주교의 하이브리드라고 고백한다. 외가가 불교였다. 그는 또 개신교와 천주교의 하이브리드라고 말한다. 개신교 미션스쿨을 졸업했다는 뜻이다. 이런 의식 때문인지 그는 타종교를 쉽게 포옹한다. 다른 종교도 우리 사회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사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그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으로 이어진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난 책 한권을 읽으면서, 인생을 깨달았다.
세계 오지 여행을 하고 재난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하면서 성공한 삶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성공했다고 꼽는 사람들은 NGO 직원들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사람(중략) 뜨겁게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모든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사람이 내게는 성공한 사람이다.(중략)무엇이든 자신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놓고 가는 것 당신이 이곳에 살다간 덕분에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더 풍요로워지는 것이 이것이 바로 성공이다(pp. 207~211).
한비야가 ‘가장 닮고 싶은 한국 여성 2위’까지 올랐다는 여론 조사를 듣고, 성공에 관한 단상을 풀어낸 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성공에 목말라 있다. 높은 학력, 조직에서의 승진,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성공에 목메고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사회는 비정해지고 따뜻한 삶은 없다. 한비야의 말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면 그것이 성공한 삶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는 좋은 책 한 권과 마주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선배를 만났다. 그의 책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독자에게 가슴 뛰는 삶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었다.
늘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 발전하며 독자와 함께 성장해온 한비야가 이번에는 또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2009년 7월, 8년 6개월간 긴급구호 팀장으로 일해 온 국제 NGO 월드비전을 그만두고 훌쩍 먼 나라로 유학을 갔다. 그가 말한 대로 이번 유학도 지금 세상보다 조금은 더 나은 가슴 따뜻한 세상을 남기고 가는 선택이다. 그것이 한비야 방식의 성공을 하는 과정이다.
이제 당분간 세계의 오지를 누비며 사랑의 손길을 나누는 한비야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곧 돌아와서 우리들에게 더 튼실한 사랑의 씨앗을 뿌리는 날을 기다린다. 가슴을 뛰게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