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아들로 유명한 악당이다. 지나가는 행인을 잡아 자기 침대에 눕혀놓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더 크면 잘라 죽였고, 작으면 몸을 늘려서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론은 프로크루스테스 자신도 테세우스에게 잡혀 그 침대에서 잘려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날로 생활이 발전해지고 사람들 또한 편함에 익숙해져서 조금의 불편도 감수하기 싫어한다. 특히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제적 생활은 높아지는데 공공윤리의식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남해읍내 간선 도로변의 아침 출근길과 등굣길 풍경을 본다. 팔십 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아파트는 거의 없었다. 아직 소방도로도 많이 뚫리지 않았고 자가용 보유율도 낮았다. 이동수단은 대중교통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소통도 원활하였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많이 달라졌다. 전세를 살아도 차는 있어야 한다며 거의 모든 가구가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래서 주차공간이 협소한 아파트 앞의 도로나 주택지 주변의 간선도로 들은 차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학생들의 등교시간이나 출근시간에 안전과 통행에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차주들의 편리함으로 인해 밤 시간과 아침시간 도로 가장자리에 주차한 차들이 도로를 이용하는 학생과 행인, 다른 운전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이른 아침 남해여중 앞을 지나 향 공장 인근 도로를 지나쳐 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너무 혼잡하다. 중앙선도 없는 도로의 통학로 가장자리 주변에 인근 아파트와 주택의 차들로 빼곡하다. 평소엔 충분히 비켜갈 수 있지만, 가장자리 주차로 말미암아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차와 마주치면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 학생들은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비좁은 틈을 빠져나가고 한쪽 차는 꼭 양보를 해야 하는 형편이 펼쳐진다. 이런 상황에 기다려주는 운전자가 있는가 하면 나 몰라라 하고 가버리는 일도 있다. 양보를 받고 가는 운전자의 모습도 여러 형태다. 고맙다는 손짓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 무표정하게 지나가기 일쑤다. 자신 또한 기다려준 것에 응답이라도 받으면 기분이 좋지만, 그냥 행하게 지나가면 참 씁쓸한 기분이다. 모두가 염치와 배려가 부족하다.
자동차는 현대문명의 이기이다. 또한, 개인재산이며 재산권 행사의 권리도 있다. 하지만, 공공의 편리를 저해할 때는 문명의 이기가 아닌 방해꾼으로 된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한다. 문득 일본 대지진 때 뉴스의 화제로 잠시 떠돌던 일본의 메이와쿠(迷惑)이야기와 우리나라의 염치문화를 생각해본다. 메이와꾸는 일본인들이 어려서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먼저 듣게 되는 말이며 일생을 거쳐 강조되는 말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이다. 이 예는 일본 여행자들의 후기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공공시설 활용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사항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우리나라에는 염치(廉恭)라는 말이 있다.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란 뜻이다.
이런 동서양의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주차한 사람, 기다려주는 사람, 길을 가는 행인 모두 자신만의 침대를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생활에서 그 침대에 맞으면 좋다고 하고 부족하거나 과하면 잘못됐다고 외치는 것이 지금의 우리 모습이다. 이것은 개인 이기주의와 더불어 집단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일단 외치고 주장하기 전에 내가 하는 일로 인해 타인에게 피해나 불편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배려와 염치가 중요하다. 나만 편하자고 하면 결국 그 피해는 돌아서 자신에게 오는 것이다. 작은 일이지만 생활에서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태도가 메마른 이 시대를 사는 좋은 해결책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