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을 가다보면 새로운 기차로 갈아타야 할 때가 있다. 나는 이번에 기차를 갈아타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시작한다. 수석교사로 출발을 한다. 수석교사는 처음 만들어진 제도로 우리 사회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누구나 새로운 세계로 가는 순간은 불안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제법 교직 생활을 했는데도, 떨리는 마음이 수그러들질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수석교사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됐다. 1981년 한국교육개발원이 주관한 세미나에서 그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다. 그 후 제도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상황과 교육계의 입장 차이로 현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다행이 2008년 3월부터 시범 운영이 실시되고, 2011년 6월 29일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법제화에 이르렀다.
초․중등교육법 제20조는 교직원의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는 교장, 교감, 교사에 대한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수석교사의 임무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을 지원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가 추가되었다. 법 조항에 보듯 수석교사는 가르치는 업무 외에 동료 교사의 교수・연구 지원 활동을 한다. 이는 전문성에 상응하는 역할 부여로 수업 전문성을 가진 교사가 우대 받는 교직 풍토를 조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학교 조직은 행정 관리 체제로 교장, 교감에 의한 관리 업무가 중심이었다. 교사는 관리 행정의 하급 구조에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학교가 행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조직이다. 자연히 교사들에게는 수업보다 행정 업무 처리가 큰 비중을 차지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만들어진다.
교장과 교감 중심의 수직적 학교 조직은 학습의 효율성을 신장시키는데 어려움이 있다. 관리자는 행정 업무도 하고 수업 장학을 하기 때문에 학교 경영에도 어려움을 느낀다. 교사들 업무 처리 부담은 결국 수업 전념을 어렵게 하면서 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조직은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사회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
수석교사의 출발은 학교장의 교수-학습과 관련된 학교 경영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수석교사가 학교에서 동료 교사들의 수업 지원을 하면 수업도 살아난다. 수업이 살아나면 학교에 새로운 학습 조직 문화가 정착한다.
이런 현실을 앞에 놓고 일부에서는 엉뚱한 걱정을 한다. 학교에 가면 관리자와 수석교사 간에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수석교사 자격 연수 기간에도 현장에 가면 이런 갈등이 예상되니 슬기롭게 대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이는 수석교사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수석교사는 학교 조직을 수업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제도이다. 학생들에게 좋은 수업을 하기 위한 것이다. 관리자와 수석교사 모두가 학생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열고 있다면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수석교사 제도는 존경과 사랑이 넘치는 문화가 만들어져 우리 학교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길을 열 것이다.
연수 기간에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정작 이 문제가 아니었다. 연수 내내 강사들은 수석교사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강조했다. 동료 교사를 지원하는 수석교사는 그에 걸맞은 역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량과 함께 인간적으로 동료 교사들이 닮고 싶어 하는 리더십도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이런 역량이 있을까에 대한 의문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과연 내가 동료 교사의 어려움을 읽고 따뜻하게 도닥거려 줄 수 있을까. 그들이 인간적으로 닮고 싶어 하는 인품의 향기를 낼 수 있을까. 밝고 맑은 교실 풍경을 꽃 피울 수 있을까.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어서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답을 얻었다. 나는 교직에 들어서면서 비교적 큰 과오 없이 순탄하게 걸어왔다. 가르치는 일에 신념을 보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교사로서 사랑의 눈빛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학생들의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꿈을 깨우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이 배움의 교실에서 행복하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열정을 통해 재능을 꽃피우는 경우도 많다. 나는 후자의 길을 가고자 한다. 교사로서 학생과 배우고 익히는 길을 흔들림 없이 가고자 한다.
동료 교사들이 닮고 싶어 하는 리더십도 생각해 보았다. 훌륭하고 좋은 사상, 그리고 뛰어난 역량이 리더의 그릇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넓고 원대한 사상과 남보다 우월한 역량만 있으면 무슨 소용인가. 고매한 생각을 생활에 알맞은 사고방식으로 다듬어 가면서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남에게 감화를 줄 수 있다. 중심에 있는 화려한 꽃보다 들에 주변과 어울려 핀 이름 없는 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선생님들에게도 가르치기 보다는 사명을 다함으로써, 그들이 나를 닮고자 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 지금 당장 그들의 눈앞에서 화려하기 보다는 그들의 먼 훗날에 기억의 눈부심으로 남고 싶다.
내가 수석교사가 되었다고 하니 주변에서 높은 자리(?)로 올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말은 어떤 의도로 던졌는지 모르지만, 내 마음은 아니다. 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수석교사라는 낮은 자리로 왔다. 그들에게 소중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마음은 떨림뿐이다. 긴장돼서 떨리기도 하지만, 새 길에 대한 설렘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은 변화와 창조적인 기능을 동반하게 된다. 그 기능이 가져올 보람과 성취가 나를 떨리게 하는 것이다.
올 겨울은 유독 추웠다. 집을 떠나 6주 동안 하는 연수는 체력적인 부담도 있었다. 그런데도 합숙 연수가 금세 지났다. 겨울나무가 소생의 봄빛을 맞이하는 것처럼 견뎠기 때문이다. 새 학기에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갈 생각에 마음은 내내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