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 스승의 날이다. 교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날이다. 돌이켜 보면 스승의 날만 되면 각종 행사를 하면서 하루를 보냈었다. 당일은 당연히 수업 없이 하루를 보냈다. 마냥 즐거운 시간만을 보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뜻깊은 시간을 보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자들이 손에 쥐어준 선물의 포장을 뜯어보면서 서로가 웃고 즐겼던 것 역시 좋은 추억으로 남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승의 날을 전 후하여 학교 교문앞이 살벌해 진 시절도 있었다. 불과 몇 년전 까지의 일이다. 암행 감찰을 실시하겠다는 상급기관의 시선이 학교 앞까지 다가 왔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게 학부모를 가장한 학부모에게 금품을 받았다가 적발된 교사들도 있었다. 신뢰가 모두 떨어지고 이제는 학부모에게 흔한 음료수 하나라도 받는다면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아직도 촌지가 있다는 보도를 접하다보면 정말로 그 보도가 사실인지 밝혀보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학교가 문을 닫았던 적도 있다. 스승의 날을 조용히 보내기 위해서는 학교문을 닫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난을 피해갈 방법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다시 학교의 문을 열게 되었다. 스승의 날에 재량 휴업을 하는지에 대한 보고도 해야 했다. 스승의 날인데 교사들은 이래 저래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문을 열면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던 학교가 문을 닫으니 학교가 문을 닫는다고 비난을 했다.
최근에는 문을 열지만 행사없이 지나는 학교들이 많다. 아주 간단한 학교행사도 하지 않고 정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사들 누구도 행사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학교마다 학생회가 있지만 교사들이 스승의 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행사를 하고자 하는 모습은 정말로 찾기 어렵다. 교사들이 조금이라도 힌트를 주면 되겠지만 결국 학부모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졸업식때는 교사들이 힌트를 주면서 학생회에서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지만 스승의 날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쉬지 않고 생기는 일들이 있다. 바로 졸업한 제자들의 방문이다. 스승의 날을 전 후해서 많은 제자들이 찾아온다. 고등학교 학생들부터 대학교 학생들, 직장을 다니는 제자들도 간혹 찾아온다. 그것이 스승의 날을 맞이하는 교사들에게 가장 행복한 일이다. 제자들의 방문에 그나마 얼굴 펴고 스승의 날을 보낼 수 있는 것이다.
학교마다 새롭게 스승의 날 행사를 준비하는 곳들이 있다고 한다. 스승의 날을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행사가 정말로 학생들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 했다면 다른 학교에 전파를 해야 하겠지만 교사들이 조금이라도 나섰다면 그리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학생들의 가치판단을 믿고 인권조례까지 제정되어 공포된 상황이기에 이제는 학생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기대를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행사라면 필자는 기필코 반대 입장이다.
그렇다면 필자의 입장은 무엇인가.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다리자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행사를 추진하지 말자는 이야기이다. 학생들에게 많은 자율권이 부여된 상황이 최근의 분위기라면 그동안 잠재했던 학생들의 의식이 깨어난다면 충분히 훌륭한 스승의 날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때를 기다리자는 이야기이다.
언제 그렇게 될지 필자도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스승의 날이 되면 공식적인 행사를 하고 안하고와는 관계없이 각 학급의 학생들이 아침에 기본적인 준비를 하여 교사들을 기쁘게 하는 일들을 흔하게 접한다. 그것을 조금만 발전시킨다면 훌륭한 학교행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만간 학생들 스스로 스승의 날 행사를 충분히 기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올 것으로 믿고 있다.
어떤 학교에서 행사를 축제화 한다고 해서 그것을 따라가기 보다는 학생들 나름대로 준비부터 실행까지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우선이다. 졸업식을 축제화 한다고 하니,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다. 스승의 날도 충분기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본다.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부담없이 지낼 수 있는 스승의 날 행사가 보고 싶은 것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는 스승의 날 행사가 보고 싶은 것이다. 그날을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