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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선생님의 마음가짐 (64)

기숙사에서 기상을 알리는 음악이 들려오는 아침, 김종제 시인의 ‘복사꽃 편지’를 읽었다. 시만큼 아름다움을 주는 글은 잘 없다 싶다. 시를 읽으면 여러 생각들이 샘솟듯 솟아오른다.

“지난 생에/ 꽃으로 맺은 약속을/ 잊지 아니하여 왔더니/ 소낙비에/사나운 바람에/ 복사꽃 짧아서/ 붉은 꽃잎 편지는/ 갈기갈기 찢어져/ 바닥에 떨어져 뒹굴고 있네/ 조각난 저 편지/한 잎, 당신의 입술을 읽네/ 한 잎, 당신의 눈을 읽네/ 한 잎, 당신의 가슴을 읽네/ 한 잎 저 글속에/ 내가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더니/ 복사꽃 편지의 나를/ 당신이 읽고 있네/ 한 잎, 거친 손을 읽네/ 한 잎, 뜨거운 혀를 읽네/ 한 잎, 숨 가쁜 나의 뼈를 읽네./”

이 시를 읽으니 우리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바로 복사꽃 편지라는 생각이 든다. 복사꽃은 복숭아꽃이다. 도화라고도 한다. 복사꽃 같이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 학생들이 소낙비에 또는 사나운 바람에 떨어지고 고운 빛깔과 모양마저 뭉개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마는 상처투성이의 학생들이 바로 떨어진 복사꽃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낙심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나의 편지가 되어 선생님에게, 부모님에게,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대견스럽다.

우리 선생님들은 이런 섭섭한 마음, 서운한 마음, 상처 입은 마음, 외로운 마음,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처량한 신세인 학생들에게 찾아가 그들의 편지를 하나하나 읽어주고 답해준다. 조각난 저 편지를 일일이 붙여서 읽고 또 읽는다. 보잘것없는 한 잎 입술을 읽고 눈을 읽고 가슴을 읽고 함께 슬퍼하고 함께 눈물을 짓는다.

학생들의 애절한 사연 속에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니 학생들도 복사꽃 편지가 되어 있는 선생님에게 다가와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 가슴을 놓는다. 함께 울고 함께 웃고 함께 즐기고 함께 내일을 기약한다. 나 못지않게 힘들어하시는 선생님의 편지를 읽고는 다시 힘을 얻는다. 선생님의 한 잎, 거친 손, 뜨거운 혀, 숨 가쁜 선생님의 뼈를 읽고는 울음이 웃음으로 변한다. 슬픔이 기쁨으로 변한다. 실망이 희망으로 변한다.

학생들은 나 때문에 거칠어진 선생님의 손이 생각난다. 칠판에 글을 쓰시는 선생님의 고운 손이 거친 손으로 바뀐 것을 깨닫는다. 예쁜 손이 거친 손이 되어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판서하시면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모습에 감동된다.

선생님의 나를 향한 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열정을 가지고 가르치시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몸이 아파 도저히 수업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도 최선을 다해 가르치시는 따뜻한 선생님의 입술이 생각나서 어쩔 줄 모른다.

거칠 줄 모르는 선생님의 열정이 나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애를 쓰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랑스러운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학생들은 비록 상처를 입고 빛이 사라지고 희망이 없어지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여도 선생님의 복사꽃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얻고 기쁨을 얻고 내일을 기약하고 미래를 얻는다.

서로가 복사꽃 편지가 되어 힘을 주고 힘을 얻고 용기를 주고 용기를 얻고 격려를 주고받으면서 연애편지 읽듯이 따뜻하게 읽어 내려간다. 또 다시 편지가 오기를 기다린다. 밤새는 줄 모르고 편지에 답을 한다. 식사를 하면서 편지를 읽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편지를 읽기도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 삶의 기쁨을 되찾고 희열을 맛본다. 비록 복사꽃 편지라 할지라도 연애하는 이들의 편지 못지않게 아름답고 귀한 편지라 차곡차곡 모은다. 읽고 또 읽는다. 그러면서 어떻게 반응할까 고심한다. 이런 재미로 하루하루 세월을 보낸다. 그러면서 사제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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