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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칼럼

자유학기제, 현실과 이상 함께 고려해야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달 15일 열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자유학기제' 도입을 보고하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공약인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1학년의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도입하려는 정책이다. 교과부는 올해 2학기에 자유학기제 시범 중학교를 지정해 실시한 후, 이르면 2014학년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과부는 자유학기제 운영 기간에는 지필평가를 감축하고, 대신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과정을 마련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학기제는 학생들이 평가의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진로, 적성, 소질 및 재능 등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물론 중학교 1학년의 자유학기제에도 주 교과 수업은 유지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꿈과 끼를 찾도록 이 기간엔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토론·실습과 다양한 진로 체험 활동을 강화한 학교 교육을 진행하는 열린 교육 체제이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자유학기제'는 문용린 신임 서울교육감이 추진하는 '중1 진로 탐색 집중학년제'와 맥을 같이한다. 진로 탐색 집중 학년제는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소위 시험이라는 교육평가를 부과하지 않고 진로탐색 기간으로 운영하는 게 골격이다. 따라서 교과부에서 '자유학기제'를 도입할 경우 대상은 중학교 1학년 과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자유학기제와 중 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는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이 대학 입시에 종속되어 ‘앞으로 나란히’, ‘점수 위주 공부’만을 맹종하며 보통교육 기간인 12년을 생활하는데, 적어도 학 학년 또는 한 학기 정도는 학생들이 자신의 소질, 적성, 재능, 특기 등을 되돌아보며 진로 체험, 직업 탐색, 자유 탐구 등을 하도록 배려하려는데 근본적인 취지가 있다.

이번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한 ‘자유학기제’는 외국, 특히 유럽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들면,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면 그때까지 드러난 학생의 적성과 성적을 감안해 대학에 진학하는 게 적절한지, 직업 교육을 받는 게 나은지를 결정해준다. 덴마크에선 초등학교에서 고교 진학 전까지 9년 동안 줄곧 한 담임교사가 아이를 관찰하며 진로 선택을 도와주고, 고학년이 되면 1~2주일씩 직업 체험도 시킨다.

아일랜드에서는 학생이 희망하면 고교 진학 전 1년 동안 시험 압박에서 벗어나 관심 있는 분야를 체험해보는 '전환(轉換)학년제(transtion)'를 시행하고 있다. 교과부의 자유학기제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를 모델로 한 것이지만 양국의 교육 환경과 여건이 다른 만큼 똑같이 적용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

물론, 이번 박근혜 정부가 도입하려는 자유학기제는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파격적이고도 혁신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유학기제는 근본적인 목적과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에 오랜 관행으로 뿌리박힌 점수 위주, 학벌 추종 인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기대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특히 이 제도 도입에는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첫째, 공교육 정상화라는 근본적인 목적에 역행하여 오히려 사교육이 팽배할 우려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1학년은 중등학교 입문기이다. 따라서 학업 성적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기다. 따라서 학부모들이 자유학기제의 본래의 취지를 살려 이 기간에 자녀들이 진로를 찾아내도록 하기보다 다음 학년의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해 자녀를 사교육 과외 시장으로 내몰 우려가 없지 않다. ‘평가 시험 최소화’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평가 시험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둘째, 학생들이 소질과 적성 등을 탐색하여 진로 체험을 하려는 본래 의도를 벗어나 공부하지 않는 기간으로 허비하면 학교 ‘공부’와 진로, 적성 등 ‘공부 아닌 것’ 모두를 놓칠 우려가 있다. 1990년대 제6차 교육과정기 때 우리나라에 휘몰아쳤던 열린 교육의 병폐가 재현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자유학기제 운영 기간에도 국어, 수학, 영어 등 주 교과 수업은 진행토록 되어 있다. 이들 주 교과 교육과 진로, 적성 탐색 등 자유학기제 프로그램과의 원활한 연계가 담보되지 않으면 자유학기제 교육은 ‘공부 안 하는 프로그램’, ‘노는 프로그램’이라는 비뚤어진 인식과 실행이 교사와 학생들에게 안주할 개연성이 있다..

셋째, 자유학기제가 도입되면 이는 단순한 교육 정책이기보다는 하나의 교육제도로 자리잡게 된다. 교육이 백년지대계인 우리 교육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장기간에 걸친 여론 수렴 등을 거친 후 도입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제도를 바꾸는 데는 장기간의 실험과 준비기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자유학기제를 다른 교육 공약 중의 하나로 ‘끼워넣기’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넷째, 자유학기제를 도입하면 중학교의 단위 학교별 학교교육과정이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주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와 자유학기제 지도 교사의 업무 분장과 지도 프로그램 구인 연수가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그동안 우리나라 교육에서 초·중·고교 공히 진로 지도가 아주 부실했다. 진로·진학 상담 교사가 중등학교에 처음 배치된 게 2011년부터로 전국에 4,550명밖에 되지 않아 학생 830명에 한 명꼴이다. OECD 국가들은 상담 교사 한 명이 200명 미만의 학생을 맡아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관리해주고 있다. 학생 진로 교육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선행되지 않으면 자유학기제는 이벤트성 실험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결국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하려는 자유학기제가 실행되면 우리나라 교육제도에 새로운 큰 획을 그을 것이다. 암기식ㆍ주입식 찌든 우리 교육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진로 적성 탐색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프로그램을 개발과 제공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의욕만 앞서 무리하게 도입하면 시행착오와 공교육 부실을 가져올 우려도 상존한다. 자유학기제가 우리 교육제도에 연착륙하려면 시범학교 운영 충실, 각계각층 여론 수렴, 우리나라와 외국의 여건과 사례 비교 등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제반 고려 사항을 면밀하게 검토한 후에 전면 도입 여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자유학기제가 중학교 1학년 과정에서 운영될 가능성이 높지만, 비단 중학교 교육과정 시스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16년의 학제 전반과 12년간의 보통교육 시스템 전체를 세심하게 점검한 후에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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