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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봄을 주제로 한 몇 편의 시

봄이 지금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머지않아 엄청남 초록이 세상을 점령할 것이다. 봄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던 사람들이 세상을 점령해버린 초록을 보고는 기가 질리고 말 것이다. 지금 들판으로 나가 보라. 양지쪽엔 이미 냉이도 질경이도 씀바귀도, 그리고 클로버도 굳은 땅 마른 풀 섶을 뚫고 꽃샘추위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도시에 사는 분들은 길 가 개나리나무 행렬을 눈여겨보거나 일렬로 늘어선 쥐똥나무 검은 가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아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일제히 돌격하기 위해서 지금 태양의 돌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한 순간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푸른 봄은 순식간에 정원을 점령하고 가로수 길을 점령하고 눈을 들면 먼 산 전체가 이미 초록의 군단에 점령당하고 말 것이다. 봄은 그렇게 이적하여 온다. 꽃샘추위 속에 숨어서, 검은 나무껍질 속에 숨어서, 응달에 남아있는 어름 덩어리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산과 들, 호수와 바다, 도시와 농촌을 삽시간에 지배한다.

한눈팔거나 방심하면 안 된다. 봄이 오면 시작하려던 계획들이 갑자기 들이닥친 봄에 혼비백산, 갈피를 못 잡는다. 조심해야 한다. 손꼽아 기다리던 봄은 그렇게 들이닥친다. 노처녀들도 노총각들도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 갑자기 그들에게도 봄이 이적하여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봄 조심

잔설이 사방에 널려 있다고
응달엔 흰 눈이 수북수북 쌓였다고 안심하면 안되요
나무들이 모두 겨울잠을 잔다고
들판이 온통 마른 풀 세상이라고 맘을 놓으면 안되요
마른 풀 섶에 숨어서
검은 나무껍질 속에서 때를 기다렸다가
어느 날 방심하는 사이
봄은 해일처럼 당신을 덮친답니다
밤이고 낮이고 장소불문 세상을 점령합니다
봄을 조심하세요
강력한 봄의 물살에 떠밀려가지 마세요
사나운 들짐승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멀리서 오시는 성자를 영접하듯 경건하게 맞이하세요
젖은 들녘에 눈보라가 친다고
칼바람에 나뭇가지 휘어진다고
멀리 남녘에나 봄이 왔다고 딴청부리지 마세요
- 필자의 졸시 전문

나는 원래 시골사람이다. 낳고 자란 곳도 시골이고 군대생활을 한 곳도 산세가 험한 산악지역이거나 인근에 농가가 있고 농지가 펼쳐진 시골 지역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 때문에 대도시에 살고 있지만 나는 내가 시골 사람이라는 생각을 지우질 못 한다. 어렸을 때의 경험은 평생 그 사람을 따라 다니게 마련이다. 그래서 노래도 어린 시절 배운 동요는 평생 잊지 못하고 십대 적에 배운 대중가요가 평생 그 사람의 취향으로 굳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고향은 대부분 옛날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어쩌다 고향에 들르면 이미 고향은 도시로 변해 있거나 낯선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오다가다 만나는 사람들도 낯설기만 하고 어쩌다 고향사람을 만나도 옛날의 인심은 많이 변색해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는 고시조가 무색하게 되었다. 사람뿐이 아니라 산천도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속엔 여전히 고향이 살이 있다. 고향의 인정이 살아 있고 고향의 풍광이 환하게 예전 그대로 살아 있다.

옛날에 사라진 들길이 살아 있고 마을 앞 공동우물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웃사람들조차 친구들조차 늙지 않고 그대로 거기 있다. 현실이 아닌 추억이거나 착각이지만 우리는 그 추억과 착각을 버리지 못한다. 수없이 글로 말로 고향을 소비하고 팔아왔지만 고향은 여전히 무궁무진한 화석연료가 매장된 유전처럼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옛이야기를 생산 제공하고 있다. 나는 시를 쓰려고 또 하나 고향의 추억 하나를 끌어왔다. 내 시에 나오는 병아리와 토끼는 바로 내 어렸을 적 바로 그 병아리와 토끼다.


하얀 봄

입춘도 엊그제 지나고
봄을 맞으러 어디로 나설까
완행버스를 타고
몇 조각 남은 고향 햇살이나 쬐고 올까
그 여자네 마을 들판으로 가
옛날의 논둑길 한동안 걷다 올까
병아리의 솜털에 봄이 묻어 왔는데
토끼 풀 망태 속에 봄이 담겨 왔었는데
이제 봄은 소래포구
오리 물질에 떠다니네
폐선의 깃발에 하얀 봄이 나부끼네
- 필자의 졸시 전문

봄은 부산하다. 하늘도 땅 속도 물 속도 소란스럽다. 나무에서 나무로 풀밭에서 논밭으로 분주하게 날아다니며 새들은 집을 짓고 물 속에서는 개구리 알이 따뜻한 봄물에 잠겨 부화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땅 속에 있던 애벌레가 기어 나와 우화를 준비하는가 하면 나무 위 까치둥지엔 벌써 까치의 포란(抱卵)이 시작되었다.

엊그제까지 부산하던 까치부부가 한결 조용해진 걸 보면 지금 알을 품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고라니는 물을 좋아하는 사슴과(科) 동물이다. 그래서 고라니를 영어로는 'water deer'라고 한다. 인천 소래습지생태공원에도 고라니가 뛰어다니는 걸 본 적이 있다. 시화호 쪽으로 차를 몰고 가다 보면 넓은 습지가 펼쳐지고 여기 저기 고여 있는 물웅덩이 근처에서 심심찮게 고라니를 목격할 수 있다.

봄은 생명이 깨어나는 계절이고 뭍에서 물에서 공중의 나무 꼭대기에서 바야흐로 생명은 탄생되고 있다. 어찌 그 장엄한 계절의 변화를 몇 줄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무수한 시인들이 봄을 노래해 왔다. "때는 봄/ 시간은 아침/ 아침 일곱 시/… 하느님 하늘에 계시니/ 세상은 모두 평화롭도다" 하는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피파의 노래' (Pippa's Song)에서부터 "오늘은 91년 4월 25일/ 뜰에 매화가 한창이다./ 라일락도 피고/ 홍매화도 피었다…" 하는 천상병의 '우리 집 뜰의 봄'에 이르기까지 봄노래는 부지기수로 많다.


포란 중

강변 모래밭이 하얗게 피었더라
얼음 풀린 호수 잔물결로 흐르거나
떠나는 철새 깃털에만 묻어나고
자전거 바퀴살에만 붙어 달리는 게 아니라
봄은 구두 수선공 손끝에서도 펄럭이고
탑골공원 장기 알에 함성으로 섞여서도 온다
기다려 오는 봄이 아니듯이 붙들어
머물지 않고 약병아리 날갯짓 따라 가버린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던 까치가
엊그제 부터 조용하다, 포란 중
갈대숲엔 만삭의 고라니 햇볕을 쬐고 있다
- 필자의 졸시 전문

바야흐로 봄은 목전에 와 있다. 머지않아 목련은 동네 어귀마다 화사하게 피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부풀게 하고 라일락은 온 종일 향기를 내뿜어 모두를 아련한 추억 속으로 이끌 것이다. 아이들은 강둑을 달리고 바닷가로 나설 것이다. 아이들의 골격은 강바람에 굵어지고 아이들은 눈망울은 바닷바람에 익어갈 것이다. 1985년 첫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 소개한다.


아이들의 봄 마중

봄이 오면 아이들은 산으로 오른다
도회지 산에는 도회지 아이들이 오르고 시골
산에는 시골 아이들이 온종일 흙칠을 하며 오르고 내린다
강가에 사는 아이들은 강둑을 달리고
바닷가 아이들은 바닷가로 나선다

강바람에 굵어지는 아이들의 골격
바닷바람에 익어가는 아이들의 눈망울
산바람 들바람에 피어나는 아이들의 근육
일 년이면 찾아오는 두세 번의 태풍과
한두 차례 홍수에 길들여지며 엄동설한의
겨울과 작열하는 뙤약볕에 익숙해지고
조국의 언어가 스스로 몸에 배는 아이들

이 땅에 나는 정다운 곤충과
이 땅에 자라는 아름다운 들꽃에 어느 결에 낯익히고
우리나라 토양에 깊이깊이 뿌리를 내리는 아이들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아프리카를 닮아가고
아메리카의 아이들이 아메리카를 닮아가듯이
우리나라 아이들은 온종일 우리나라를 닮아가며 자란다

수많은 조상들이 일구고 간 터전에 새싹처럼 돋아나
아름다운 금수강산 예지를 배워
온 누리 밝은 빛이 되는 아이들 봄은
다시 오고 아이들은 다시 산으로 오르고 바닷가로 나선다
온몸으로 봄바람을 맞으며 강둑을 달린다
- 필자의 졸시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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