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사실이지만 2012학년도부터 중학교에서 성취평가제가 시행되고 있다. 2014학년도 부터는 일반계 고등학교도 성취평가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성취평가제는 국가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교과목별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을 토대로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평가하고, 성취도를 부여하는 평가제도이다.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에 맞는 평가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기준을 정하고, 이에 맞는 출제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성취평가제가 기존의 절대평가와 별반 다름이 없다. 절대평가를 실시함으로써 성적 부풀리기 등의 문제가 지속되자 상대평가로 바꿨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대학입시에서 반영되었던 것이다. 중학교는 이미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를 도입했다. 절대평가라는 예전의 용어를 사용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는 비난이 있었을 텐데 성취평가제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그런 비난은 받지 않고 있다. 그래도 알만한 사람은 성취평가제가 절대평가라는 것 쯤은 다 알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를 시행하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예전의 절대평가때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성적부풀리기로 오인할 수 있는 상황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A등급이 지나치게 높게 나오거나 E등급이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확히 진단하면 난이도 조절 실패가 원인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교육청에서는 성취평가제의 취지에 맞지 않게 출제를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전에 정한 기준대로 출제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들은 성취평가제의 취지에 맞게 출제를 했다고 항변한다. 학습목표처럼 미리 성취기준과 성취수준을 정해놓고 수업을 진행하고, 그에 맞게 출제를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등급이 높게 나왔다는 것이다. 교사들은 성취평가제에서 특정등급이 높게 나왔다는 것은 해당 등급의 학생들이 성취평가제의 취지대로 학습을 제대로 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물론 최하 등급이 많이 나왔다면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상위 등급이 높게 나왔다면 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들은 결국은 오랫동안 묵은 논란과 다름이 없다. 상위 등급이 높게 나오면 교사들이 제대로 가르치고 학생들이 제대로 배웠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성적을 부풀리기 위해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예전의 논란이었고 지금의 논란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결국 성취평가제 도입이 절대평가제 도입이었고, 이로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것이다.
이런 사정때문인지 최근 서울의 한 교육지원청에서는 교감연수를 통해 정상분포 곡선이 나올 수 있도록 출제할 것을 독려했다고 한다. 즉 상대평가처럼 최상위 등급과 최하위 등급이 비슷하게 나오도록 하고, 중간 등급이 많이 나오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교감들이 학교에 돌아가서 교사들에게 이런 분포가 나오도록 출제를 독려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에서 정상분포 곡선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결국은 성취평가제의 기본 취지를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상대평가제와 결과를 똑같이 하도록 독려하면서 명칭은 성취평가제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충분히 예견된 문제였음에도 그대로 시행에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2014학년도 부터는 일반계 고등학교도 성취평가제가 도입되는데, 중학교 전체와 특성화고등학교등 일부 고등학교에서 시행하였는데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일반계 고등학교 까지 모두 적용하게 되면 예전의 절대평가 시절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절대평가를 성취평가제로 바꾸면서 연구 용역등에 많은 예산이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결과는 평가의 명칭만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성취평가제가 일반계 고등학교까지 전면 시행되기 전에 다시 검토에 들어가야 한다. 교사들을 믿고 계속해서 이 제도를 시행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평가처럼 정상분포 곡선이 나오도록 계속해서 교육청에서 관여를 할 것인지 정해져야 한다. 지금처럼 지나치게 교육청에서 간섭을 하거나, 교사들을 믿지 못하는 풍토에서는 그 어떤 방법의 평가제도도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교사들에게 완전한 평가권을 부여하고, 상식이하의 평가문제가 발생하면 지속적인 계도활동을 펼쳐 교사들 스스로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간섭이 아니고 적절히 유도를 해달라는 이야기이다. 지금처럼 평가권을 주지 않는 성취평가제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