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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한 권의 책, '공부하는 삶'이 주는 의미는

정신의 찬장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질문
한국 사회는 지금 '정의가 무엇인가?'
읽기, 기억하기, 노트하기

한국사회는 짧은 기간에 가난에서 부를 이룬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가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가운데 교육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는데 대다수 국민은 인식을 같이 한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서점에는 수많은 공부법을 소개하는 책이 널려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좋은 대학 가기 위한 공부’라는 말이 앞설 뿐, 앎의 기쁨을 추구하는 공부를 안내하는  책은 찾아보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다소 생소한 이름인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1863~1948)의 '공부하는 삶'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더욱 반가운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프랑스의 가톨릭 신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지은이는 평생 배우고 익히면서 얻은 그만의 공부법을 조곤조곤 풀어내면서 공부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정신과 자세를 오롯이 제시한다. 세르티양주는 사제이기에 공부하는 삶을 “우리가 선택하는 삶이 아니라 신의 부름에 유순하게 복종하는 삶”으로 규정한다. 공부가 곧 소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소명은 실천을 요구한다. 공부를 위한 세르티양주의 실천은, 서문에 잘 표현되어 있다.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언제나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아침과 저녁에는 때에 맞는 활동을 하고, 열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탐구”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상을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지성인은 성별된 존재이므로 헛된 일을 하느라 자신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공부하는 삶'이 고담준론만 읊어대는 것은 아니다.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실제적인 공부법이 적재적소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릇을 채우려는 사람처럼 정신의 찬장에 무엇이든 채우려고 노력하라”는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인용해 “공부는 연속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수면은 본성을 새롭게 하는 필수적인 과정이기에 우리는 꼭 자야 한다”며 충분한 잠의 가치를 옹호한다. 오직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한 부모 세대들은 열심을 강조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밤을 낮 삼아 공부하게 하는 우리네 가치관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대신 “잠에서 깨는 순간과 아침 명상의 순간”과 “저녁을 성스럽고 조용하게 보내는 법”을 배움으로써 나머지 시간 모두를 공부하는 시간으로 벌충할 수 있다는 의견은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좀더 실제적으로 공부법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세르티양주는 ‘읽기’ ‘기억하기’ ‘노트하기’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많이 읽지 마라”는 조언은 의외지만 “잘 골라라”, “천재 저자들을 가까이하라”는 조언만큼은 마음에 새겨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읽는 것을 흡습하고 읽는 대로 살아라”는 명제는 금과옥조와도 같다. 이는 곧 실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위한 학문을 하는 것은 모든 지성인의 의무다. 지성인은 “자신의 시대에 속한 사람”으로 시대를 지켜 후손에게 물려주어햐 할 청지기이기 때문이다. 시대와 더불어 호흡하며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만 진정한 지성인이다. 그래서 세르티양주는 공부와 품성을 책 말미에서 강조한다. “공부하다가 이렇다 할 결실을 맺지 못하더라도 … 아무 문제 없다”는 마음으로 시련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때론 진리를 발견한 벅찬 기쁨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 그렇게 결실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지성인의 마음자리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질적인 것보다 양적인 삶을 중요시하기에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만 득시글거리는 세상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정의가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정치적 상황이 그러하고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음을 강조하지만 그런 사회는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하기 어렵다. 지금은 힘들지만 미래 사회를 밝히고자 하는 이들에게 바로 지금, 단 한 권의 책을 권하라면 '공부하는 삶'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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