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수능시험을 치는 날이다. 최근 들어 가장 좋은 날씨다. 따뜻하다. 바람이 없다. 간밤에 뿌린 비로 깨끗하다. 뒷산의 황금 들꽃은 코끝을 자극한다. 1,2학년 학생들은 열심히 운동장에서 공을 찬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자기의 실력을 유감없이 잘 발휘했으면 한다.
고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구수한 느낌이 난다. 지루하지 않다. ‘양반전’도 그러했다. 양반전에 나오는 몰락하는 양반에게도 배울 점이 많았다. 성품이 어질었다. 덕망이 높았다. 밤낮으로 글 읽기를 좋아했다. 위, 아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양반이라면 으레 오경(五更)이 되면 일어나 등잔을 밝히고 글을 읽는 것, 국을 떠먹을 때 훌훌 소리 내지 않는 것, 아내를 때리지 안 되는 것, 기물 파손을 안 하는 것, 노비에게 상스러운 욕설 안 하는 것, 돈 노름 하지 않는 것 등은 꼭 배워야 할 것들이었다.
하지만 모자라는 점도 있었다. 살림이 군색해 해마다 관가에서 빌려 주는 환자(還子)를 타다 먹었다. 빚이 천 석이나 되어도 갚지 않았다. 이게 흠이었다. 나라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내까지 남편인 양반을 욕하게 되었다.
작가는 차라리 상놈 소리 들어도 배부르고 등 따뜻하고 풍족하고 유족한 삶을 사는 것이 좋아 보였다. 인색하지 않고 남에게 베풀고, 남의 딱한 사정 돌봐주고, 비천한 것 미워하고 존귀한 것 숭상하는 이런 사람이 진정 양반이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상놈은 양반 보면 굽실거려야 하고, 엎드려 절해야 하고 설설 기어야 하니 부끄럽고 창피하다. 가난해도 언제나 존대를 받으며 평화롭게 지내는 양반과 달리 부해도 하대를 당하고 천하게 살아가고 말(馬)을 한번 거들먹거리며 타보지도 못하는 차별적인 생활이 못마땅했다.
대신 빚을 갚아주고 양반 자리까지 사게 된 부자에게 사농공상(士農工商) 모두 불러놓고 ‘양반 증서’ 만들어주고 인을 찍어 양반노릇 하도록 공식 인정을 하였지만 결국은 포기하고 달아나 버렸다. ‘양반 증서’를 보니 양반의 형식적 조건, 겉치레, 권리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치질은 두어 번만 고상하게 하고, 손에 돈을 쥐지 말고, 쌀 시세를 묻지 말고, 밥상을 대할 때 의관을 갖추고, 할 일 없이 앉아 있을 때에는 아래 위 이빨을 마주쳐 딱딱거려야 하고, 뒤통수를 자근자근 두드려야 하고...등은 사라져야 것들이라고 여겼다.
또 방 안에는 노리개로 기생이나 두고, 선비가 군색하여 낙향을 할지라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이웃 소를 빌려 자기 논밭을 먼저 갈게 하고, 동리 사람들로 김을 매게 하고 양반을 업신여기고 말을 듣지 아니하면 코에다 잿물을 뿌리고... 등도 뿌리 뽑아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양반은 정말 도둑놈과 같았고 자기도 양반이 되면 도둑이 될 것 같아 부자는 양반 되는 것 포기하고 달아난 것이다. 생산적인 사람, 실질적인 사람이 비생산적이고 허례허식 좋아하는 이보다 낫다. 형식보다 내용이 더 낫다. 교육은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