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지능(EQ)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은 설득보다는 자신의 지위와 권위로 부하를 움직이려는 강한 권력을 지닌 리더일수록 공감능력결핍증후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거나 있다하더라도 완고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승진해서 조직의 사다리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아랫사람들은 상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가가지 못하니 직언도 듣기 힘들다. 그러니 부하들의 감정을 이해 못하게 되고 점점 더 자기중심적인 세계관 속에 빠져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자기만이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골먼이 말하는 공감능력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인지적 공감능력이다. 이는 타인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공감능력이다. 둘째, 타인의 감정에 즉시 공명할 줄 아는 감정적 공감능력이다. 셋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챙겨줄 줄 아는 감정이입적 공감능력이 있다. 리더들에게 이런 공감능력이 결핍되는 징후로서는 직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목표·전략 등을 수립하고 강요하거나, 직원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이해 못하고 차갑고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한다는 것이다.
골먼은 리더의 공감능력결핍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자신에게 솔직한 의견을 말해주는 그룹을 찾거나 만들어서 끊임없이 경청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직장 안을 일부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격의 없는 시간을 보내는 리더나, 관리자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은 회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리더는 이런 증상에 빠질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것이다.
솔직히 아랫사람들이 상사를 찾아가서 자발적으로 대화를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어느 회사에서는 그러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사무실의 칸막이를 모두 제거하여 회사 분위기가 매우 좋아졌다는 기사도 있었다. 물리적 거리감을 줄여서 심리적 거리를 좁혀 능률도 오르고 소통하는 분위기에서 서로 공감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유쾌한 기사였다. 그런 회사는 차별 없이 사랑하고 이익을 나누는 상리공생(양쪽 모두 이익)으로 불통으로 인한 오해의 소지까지 줄여서 불황에도 강하다고 한다.
인간관계 형성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부터 공감능력결핍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 부부 세 쌍 가운데 한 쌍은 하루에 30분도 채 대화를 나누지 않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지난달 11~16일 전국 기혼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다. 23일 공개된 설문결과를 보면, '부부의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은?'질문에 가장 많은 32.9%가 "30분~1시간"이라고 답했다."10분~30분"과 "10분 미만"이라는 응답이 각각 29.8%와 8.6%로 나타나 결국 38.4%의 부부가 하루 30분도 대화하지 않고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 사이의 대화가 하루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면 가족끼리 얼마나 공감능력과 유대감이 깊어질 수 있을까? 그것은 자녀 교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시간은 부부 사이보다 더 부족할지도 모른다. 공감능력을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결론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화 시간의 부족은 공감할 시간조차 가지기 힘들게 할 것은 자명하다.
최소한의 친구 숫자는?
미국 사회학자 솔라 풀(1917~1984)은 한 사람이 평생 의미 있게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는 3500명 정도에 그친다고 했다. 심지어 휴대폰에 저장된 의미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150명 안팎이라고 한다. 서로 이름을 아는 사람은 2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루 중 걸려 오는 전화나 만나는 사람 수를 생각해 보면, 그 숫자는 더욱 좁혀진다. 물리적인 거리는 세계화 되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의 거리까지 넓어진 것은 아니다. 좀 더 과장하면 최적의 친구 숫자는 6명이라는 일설도 있지 않은가! 인간관계는 너무 많아도 힘들고 너무 적어도 외로워서 상처를 받는다는 뜻에서 6명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따져 보면 인간이 공감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야 할 대상도 그리 많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류 역사를 긍정의 방향으로 이끌어 간 위인들의 특징은 공감능력이 탁월한 분들이었다. 예수, 공자, 석가모니를 비롯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나 만델라 대통령, 올해의 세계인이 뽑힌 프란치스코 교황 등. 그분들은 한결 같이 인류의 아픔에 공감하고 낮은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한 최고의 공감능력을 보여주었기에 시대를 넘어 감동을 안겨준다.
불통의 시대를 사는 우리 사회에는 아픈 사람들이 넘친다. 마음의 고통은 바로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에서 비롯된다. 가정이 불안하고 젊은이가 일자리가 없어 방황하며 노후가 불안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가족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공감해주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상처 받은 아이들은 학교에 와서 친구의 아픔을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처를 되쏜다. 학교폭력이나 따돌림, 성추행, 성폭행 등. 유형은 다르지만 그 모든 범죄의 바탕에는 공감능력이 상실된 비인간성이 자리하고 있다.
리더가 먼저 공감의 자리로 내려와야
소통의 수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소통의 모습은 거꾸로 가는 현실을 타개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어주는 일이 학교 교육의 몫이다. 가정에서 힘든 아이들이 학교에서라도 서로 공감해주며 위로 받게 해야 사회에 나가 견딜 것이 아닌가. 상처를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길러주어야 악순환의 고릴 끊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처 받은 아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일이다. 이제 시대는 선생님에게는 힐러나 인생 상담자의 몫까지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면, 담임선생님은 등교하는 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눈 맞추며 인사하기, 자잘한 일상 물어보는 관심 표현하기, 친절한 답변해주기, 어려움을 먼저 알고 손 내밀기, 아이들끼리도 협동하여 해결할 수 있는 미션을 수시로 제시하는 학습 방법 제시로 공감능력을 향상시켜 줄 일이다. 상처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가시로 자신 뿐만 아니라 친구도 선생님도 찌른다. 대들고 난폭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들이 아프다는 또 다른 표현임을 알고 다가서려면 엄청난 내공과 에너지를 가져야 보듬을 수 있으리라.
학교장과 선생님들 사이의 공감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리더가 내려오는 일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베푸는 자리이니 선생님들이 다가가는 일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허심탄회하게 학생들의 일이나 담임선생님의 고충을 상담해 줄 수 있는 배려와 여유가 상존하는 학교라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다. 리더가 인생의 선배로서 직장의 상사로서 인간적인 대화로 부드럽게 공감능력을 발휘하는 학교라면 불통으로 인한 기회비용의 손실을 막고 학생들을 위한 방법은 저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학교에서는 일이 많고 고될지라도 마음이 행복하니 웃으며 일할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생에서 잠시 머물다가는 여행자로서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만난 교직원과 학생들은 단순한 인연이 아니다. 그 만남을 필연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공감능력의 3요소인 인지적 공감능력과 감정적 공감능력, 감정이입적 공감리더십을 발휘하여 상생으로 행복한 학교들이 많아졌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