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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낙화의 미학

낙화의 미학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죽음의 의식.
정사(情死) 의 미학.
- 오세영-

시인 오세영은 벚꽃의 생을 비장미와 극치미의 절정에서 불꽃처럼 사그라지는 정사의 의식으로 소멸시킨다. 출근길 어느 날인가부터 만개한 벚꽃이 화사함으로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극적인 낙화의 이미지로 또 내 눈에 들어온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이고 벚꽃이고 또 낙화이건만 해가 바뀔 때마다 내 안에 닿는 느낌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무너져 내리는 벚꽃을 바라보며 마음 한 켠에 희미한 아픔이 느껴지는 것도 시간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세월의 옷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인가.. 
 
이기철 시인은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으면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 이라고 했다.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이라고 권했다.
 
하얀 봄빛을 받으며 떨어지는 벚꽃 그늘에 앉아 오늘 하루 나를 모두 벗어놓고 싶다. 누구의 에미, 누구의 아내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고 싶다. 그러면 일상의 무거움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질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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