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처음 보았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전,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 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 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 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렇게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보면서 둘 사이에 흐르던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살아 계셨을 때 윤기 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 받은 넉넉한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
‘신시아 라일런트’의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서머라는 어린 소녀가 메이 아줌마를 만나서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부모를 잃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서머는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를 만나면서 두 사람의 넉넉하고 깊은 사랑을 받고 자란다. 하지만 이 행복은 6년 뒤 메이 아줌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깨지고 만다. 그 죽음 앞에서 오브 아저씨는 절망하고 가족은 다시 해체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오브 아저씨의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 서머는 옆집소년 클리스터와 함께 메이 아줌마의 영혼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을 절제된 언어로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은 어느 단어, 어느 구절도 버릴게 없을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고 따뜻한 문장으로 내 가슴을 어루만져 주었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사랑’임을 담담히 얘기하면서 말이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남겨진 유가족들의 슬픔은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고 싶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한 공간속에서 살아온 세월을 일순간에 부정해야 하는 엄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타 들어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온 몸으로 울고 있는 가족들의 아픔은 또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메이 아줌마’속의 서머처럼 아줌마가 사라진 생활 속에서 서머가 느끼는 그리움은 대단하고 큰 일을 통해서가 아닌 작고 자잘한 일상을 통해서였다. 아저씨의 아픈 무릎을 저녁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고로 문질러 주던 일, 집안일을 하던 아줌마가 창 너머로 그네를 타고 노는 꼬마 서머를 내다보며 “서머,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던 일 같이 작고 소소한 기억들 말이다.
희생자 유가족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딸과 아들과 함께 했던 무심하고 작은 일상들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이들도 역시 가족해체의 위기에 직면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 안의 상처와 응어리가 너무 아프고 단단해서 서로를 상하게 하고 그 상처를 할퀴면서 말이다. 작은 바램이지만 난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메이 아줌마’ 속 서머와 오브 아저씨처럼 ‘사랑’에서 찾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상실과 부재의 아픔과 화해하고 따뜻한 가족의 사랑으로 상처를 극복하길 바란다.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은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함께 살아가도록 태어났으니 서로를 꼭 붙들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마침내 아줌마의 영혼을 만나러 떠났던 길고 고단한 여행이 끝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서머’는 울음을 터트린다. 아줌마의 빈 자리를 견디는데 급급해서 속에 차오르던 눈물을 안으로 삼켜왔던 시간들을 고스란히 토해내며 ‘서머’는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