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에는 성인(聖人)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마지막까지 말하고 있다. 도덕경을 끝까지 읽어보면 성인 같은 삶이 나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도 도전해 볼 만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이는 ‘성인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하면서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떤 이는 성인의 삶이 나에게도 가능함을 느끼게 된다.
성인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덕이 두터운 사람이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좌계를 맡은 사람처럼 남에게 주는 일을 하고, 덕이 없는 자는 철(徹), 즉 세금을 맡은 사람처럼 남에게서 받는 일을 한다. 성인은 요구하는 자에게 모두 준다. 준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알고 보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준다는 것이 물질만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주는 것이다. 사랑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실에 들어가서 수업을 할 때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눈에 거슬리게 해도 책망하지 않고 참고 또 참으면 그게 바로 사랑의 실천이다.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다. 도저히 이 학생 때문에 내가 하는 수업을 망쳐놓는다 해도 참고 또 참는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이게 이 학생에게 사랑을 주는 것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면 밑천이 딸리는 것 같아도 샘물처럼 솟아난다. 비어지면 또 채워진다. 주면 줄수록 더 많아진다. 이런 원리가 샘물의 원리다.
성인은 어떠한 환경에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삶이다. 나물밥일정 자기의 음식을 달게 먹는다. 나물밥, 거친밥이면 달게 먹을 수 없다. 입에 돌을 씹은 것처럼 인상을 쓰게 되고 밥을 먹는데 애를 먹게 된다. 그래도 씹고 또 씹으면 단맛이 나고 몸에 보약이 된다.
성인은 거친 베옷일망정 자기 옷을 추하게 여기지 않는다.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는다.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이 아름답게 여겨진다. 무엇이든 만족하게 되면 추한 것도 아름답게 느껴지고 그 옷이 참 좋은 옷임을 느끼게 된다. 요즘은 거친 베옷이 참 귀하고 구하기 힘들다. 여름에는 너무 가볍고 시원하다. 이런 좋은 옷인데도 흔할 때에는 추하게 느껴지고 부끄럽게 느껴진다. 가난하게 느껴지고 남들 앞에서 고개를 잘 들지 못한다.
내가 사는 집이 오막살이 집이면 그만 불평을 한다. 남에게 말도 못한다. 거지같은 집에 산다고 말할까봐 자신의 거처를 잘 밝히지도 않는다. 오막살이일망정 자기의 집을 안식처로 생각하며 사는 이는 행복을 아는 이다. 요즘 돈이 있는 사람은 산골에 오막살이 같은 집을 찾아 별장으로 삼는다. 흙으로 지어진 집을 찾는다. 냇물이 흐르는 집을 찾는다. 새들이 우는 집을 찾는다. 조용한 곳을 찾는다. 일부러 이런 곳을 찾아오는 이도 있는데 이런 곳에 사는 것 자체가 무엇이 부끄러운가? 이런 집을 나의 최대의 안식처로 생각하니 이 사람이야말로 행복과 안식을 누리고 사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성인은 이익 되게 하고 해가 됨이 없다. 물과 같이 언제나 유익을 준다. 나무와 같이 이익을 준다. 언제나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 준다. 남에게 유익을 주는 삶이 바로 성인의 삶이다. 이로운 삶을 사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성인은 어떠하여도 다투지 않는다. 다툰다는 것은 똑같은 자다. 이기고 싶어도 이길 수가 없다. 죽은 삶이다. 삶의 속성은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의 속성은 강하고 굳세다. 나무도 죽고 나면 강하고 굳세다. 죽은 나무는 잘 꺾인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늘 이긴다. 가장 약한 물이 가장 강한 바위를 이긴다.
도덕경 마지막장을 보면 성인은 욕심 때문에 모든 것을 혼자서 차지하지 않는다. 욕심은 끝이 없다. 하나 가지면 둘 가지고 싶고 둘 가지면 셋 가지고 싶다.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싶다. 욕심이 결국 죄를 만들어내고 죽음을 만들어낸다. 우리 선생님들은 성인 같은 선생님이다. 덕이 있다. 나누어줄 줄 안다. 어떤 환경도 만족할 줄 안다. 유익을 주는 삶이다. 다툼을 원치 않는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성인 같은 선생님을 존경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우리나라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