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불링Stop bullying(학교폭력예방종합포털)의 설문조사에 응하면서 새삼 설문조사의 한계를 느낀다.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조치나 관련내용을 교육청과 학교에서 잘하고 있는지, 현재 진행하는 방안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묻는 문항은 응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교육청의 활동을 세세히 알 수도 없고,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가해자도 발생하지 않은 학교에서 해당조치내용이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 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응답을 할 경우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강제응답을 피할 길이 없다. 이것은 정확한 응답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논리가 성립되므로 딜레마에 빠진다.
스톱불링 만이 아니라 학교장 청렴도 조사, 교원능력개발평가 만족도 조사, 학생행동특성검사 등의 설문조사도 마찬가지이다. 00리서치에서 개인메일로 어느 학교 교장 청렴도 조사를 의뢰해 왔는데 그 교장과 근무해 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을 의뢰하여 표기된 안내전화번호로 이 사실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의뢰가 들어와 난감했고, 교장의 직무권한남용 문제에 대한 설문대상자가 교장의 직무범위를 알지도 못하는데도 응답해야 하는 경우, 교사들의 학생지도를 본적도 없는 학부모가 만족도 조사에 응해야 하는 경우 등 많은 문제가 포진해 있다.
또 전임지에서 학생행동특성검사를 설문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표기를 하여 담임교사들이 보호자 면담을 한 적이 있다. 보호자가 문항에 대한 해석을 잘못하거나, 검사의 취지에 대하여 잘 몰라 대충 표기하고,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을 큰 문제로 확대해석하여 표기하는 경우, 어떤 보호자는 설문지는 제출했으나 설문내용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생업에 종사하느라 바쁜 나머지 설문에 대한 심각성을 파악하지 않고 건성으로 처리한 경우였는데 행동특성 검사는 학생들의 문제성 여부를 진단하는 것이므로 사실과 다르게 대충 처리할 일은 아니다.
선거철이 되면 하루에도 몇 번 후보자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는데 비록 지방자치 기초의원선거라고 할지라도 잘 알지 못하는 후보자에 대한 응답을 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고장에 살기 때문에 안면 정도 있다고 하여 후보자를 안다고 할 수 없고, 전화조사는 서면 조사와 달리 신속하게 대답해야 하므로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것도 난감한 일이다. 설문 대상자가 설문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는 지 여부도 문제가 된다. 열심히 응답하는 사람들 중에 설문내용에 대한 이해가 잘 안되지만 응답의 당위성 때문에 가장 편한 응답이라고 생각하며 가운데항에만 열심히 표기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어떤 특별한 사회적 사안이나 학술연구를 위한 조사를 하려고 할 때, 특히 불특정다수의 의견을 조사할 필요가 있을 때 설문지에 의하지 않고 문제를 연구하거나 진단하기 어려운 현실적 이유가 있다. 자신의 학술적 주장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하여, 혹은 사회의 제 문제를 진단하는 근거를 삼기 위하여 설문의 응답비율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모든 설문의 응답자가 연구자나 조사자의 의도와 질문의 핵심을 알고 응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문제와 조사자가 요구하는 설문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설문한계가 지닌 함정을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있으므로 생각보다 많은 오차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설문의 표본오차가 ±5라는 것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행정학 사전에서는 ‘표본오차는 모집단을 대표할 수 있는 전형적인 구성요소를 선택하지 못함으로서 발생하는 오차’ 라고 정의하고, 농업용어사전에서는 ‘조사대상 전체의 일부분만을 표본으로 추출함으로써 일어나는 오차’ 라고 정의하는데 통상 +5와 –5로 본다는 것이 일반인의 기본인식이지만 수없이 많은 설문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오차는 플러스이든 마이너스이든 5이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설문조사의 한계로 인하여 설문조사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신뢰를 가지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설문대상자가 누구인가의 문제는 더욱 불신을 가중시킨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JUSTICE란 무엇인가」에서 이미 수없는 딜레마를 보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나 세상의 어떤 인물에 대하여 누가 무엇이라고 정의定義할 수 있겠는가. 자크 데리다는 파스칼릐 이야기를 빌어 ‘무력한 정의JUSTICE는 정의가 아니라’고 했다. 학교폭력이든 각종 만족도 조사든 조사 자체가 지닌 한계와 딜레마가 있는데 그 무엇에 절대성을 부과할 수 있겠는가. 특히 이 혼탁한 사회에서 개인이나 집단의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세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