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톱불링Stop bullying(학교폭력예방종합포털)의 설문조사에 응하면서 새삼 설문조사의 한계를 느낀다. ‘학교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의 조치나 관련내용을 교육청과 학교에서 잘하고 있는지, 현재 진행하는 방안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묻는 문항은 응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이 교육청의 활동을 세세히 알 수도 없고, 피해자도 발생하지 않았고 가해자도 발생하지 않은 학교에서 해당조치내용이 바람직한 결과를 얻는 지 어떤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응답을 할 경우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기 때문에 강제응답을 피할 길이 없다. 이것은 정확한 응답을 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논리가 성립되므로 딜레마에 빠진다. 스톱불링 만이 아니라 학교장 청렴도 조사, 교원능력개발평가 만족도 조사, 학생행동특성검사 등의 설문조사도 마찬가지이다. 00리서치에서 개인메일로 어느 학교 교장 청렴도 조사를 의뢰해 왔는데 그 교장과 근무해 본 적도 없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을 의뢰하여 표기된 안내전화번호로 이 사실을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의뢰가 들어와 난감했고, 교장의 직무권한남용 문제에 대한 설문대상자가 교장의 직무범위를 알지도 못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행보가 일반국민들의 우려와 달리 진보교육감의 틀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비춰 좋은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한국교총을 방문해 ‘도시형 소규모 학교 살리기’를 위하여 협력하기로 한 일이나 전교조 관련 법의 개정을 촉구하면서도 법외노조 판결에 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는 일, 자사고에 대한 입장 표명도 극단으로 흐르지 않은 점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교육감은 소속된 시도의 교육전체를 바라보고 현안문제가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하고 교육현안 문제에 대하여 직접 실태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진보, 혹은 보수로 편향된 시각을 갖기보다 전체 교육을 바라보고 문제해결과 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은 소통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소통하지 않고,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를 하면서 공감을 내세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고 명분만 요란한 낱말을 배열한 슬로건이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 피터 드러커의 ‘혁신’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떠올린다. 피터 드러커 외 는 「지식경영」 5장에서 창조적 갈등을 존중해야 한다고 피력하면서 갈등이 일어날 수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을 볼 때마다 ‘벌거숭이 임금님’이 떠오른다. 현대 미술가들이나 이를 관람하는 사람들은 ‘샘’이라고 명명된 변기 앞에서 정말 미술, 혹은 예술이라고 느끼는 것일까, 혹 ‘저건 변기일 뿐이야’ 라고 말하면 무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저어하여 침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아닌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진실을 말한 소년처럼 37억 달러를 호가하는 뒤샹의 세라믹 변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망치로 파손했다는 그 노인만이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마르셀 뒤샹의 '샘Fountain'은 어떤 전문적 해석을 가해도 내 눈에는 단순한 변기일 뿐이다. ‘나는 변기를 들어 현대미술의 면상에 집어던졌다’는 오만하고 폭력적인 뒤샹의 언어에도 공감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림으로 그리는 수공적 기술의 재현행위가 아닌 선택한다는 정신적 행위가 예술가의 본질’ 이라는 뒤샹의 이론에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림으로 그리는 수공적 기술재현행위보다 눈에 보이는 어떤 물건을 선택하여 특정한 공간에 옮겨놓는 것을 예술적 행위로 보기 어렵다, 그것을 설치예술이라고 부르는 단순한 배치라고 보기도 어렵다. 만약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을//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여왔다.//“강한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히트 ‘살아 남은자의 슬픔’-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단원고 교감의 극단적 선택을 보면서 브레히트의 이 시가 떠올랐다. 그 교감선생님도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에, 살아남은 것에 대한 슬픔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 나라에 물결치는 노란리본이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며 무사귀한을 애타게 기원해도 구조소식은 없고 참담한 결과만을 눈으로 보게 되자 ‘한명이라도 더 살았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 살아남아 오히려 더 슬펐을 단원고 교감선생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언론은 사법기관도 아니면서 사건과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여죄를 묻고 추정하고 이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압박함으로써 국민들의 정서를 유도하고 분위기를 증폭시켜 여론을 형성할 뿐 아니라 온갖 조사를 벌여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파헤칠 것이 뻔하고, 일반 국민들은 일의 정황이나 진실을 살필
세월호 참사 이후 학교의 화두는 ‘안전’이다. 최근에 도내 학교장들의 도교육청 주관 안전연수를 실시했고, 교장자격연수자들의 해외연수 대신 ‘안전’ 주제로 국내연수로 방향을 선회했으며 지역교육청의 현장방문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등, 교육기관의 노력은 가상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강의중심의 연수와 서류 확인 중심의 점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다. 강의 중심의 안전교육은 피상적이며, 보고문서 중심의 점검은 실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불가항력적인 일들도 일어나고 느닷없는 사안들도 발생하여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데 영화감독들은 이런 일들을 예상하여 재난영화를 제작한다. ‘투모로우’와 ‘인디펜던스데이’ ‘괴물’이 그런 영화들이다. 우리는 이런 재난영화를 보면서 재난과 극복에 대한 간접경험을 하고, 이웃나라의 재난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처럼 재난이나 위기상항에 직면했을 때 강하게 극복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럴 수 없이 나약한 일면을 보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성적으로 긴밀하게 움직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