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38년 만에 일찍 찾아온 추석이 지났으니 가을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태양은 뜨거워 한 낮 더위는 30도를 넘지만 아침 저녁 서늘한 바람은 때론 차가움을 느끼게 해 준다. 밤에 잠자리에 들 때 창문을 닫고 자는 것만 보아도 가을은 우리에게 왔다.
수원에 있는 일월(日月)공원. 가까이 있는 행정동이 구운동, 천천동, 율전동이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일월공원이 행복공간이다. 사는 곳 가까이에 저수지가 있다는 것,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월공원에서 가을을 찾으러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역시 가을은 고개 숙인 벼에서 느낀다. 벼를 볼 적마다 배우는 교훈 하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자연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겸손을 생각하게 된다.
논 바로 옆에 있는 수수밭. 수수 열매가 얼마나 무겁길래 수수가지가 다 휘어졌다. 휘어진 가지가 벼 있는 쪽으로 기울어지지 한 폭의 가을 풍경화가 된다. 그러고 보니 가을은 풍성하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계절이다.
성균관대학교 방향인 야외 공연장으로 가니 사람들이 모여 있다. 자세히 살피니 주로 가족단위다. 한낮 햇볕이 아직 뜨거워공연장 천장이 그늘막 구실을 하고 있는 것. 공연장은 공연이 없어도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공연장 주변의 벚나무. 봄엔 벚꽃으로 사람을 유혹하다가 여름엔 나무 그늘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버찌열매를 떨어뜨린다. 가을엔 단풍으로 가을이 왔음을 알려준다. 아직 잎새가 초록이지만 어느 가지는 성급히 단풍이 들었다. 우리들에게 가을을 먼저 알려주려고.
독자들의 관찰력 테스트 질문 하나. “벼꽃을 보았는지?” 우리는 살이 탄생하기까지 모판, 모내기, 가꾸기, 추수하기 과정을 거치지만 벼에 꽃이 피는 줄은 모른다. 벼꽃은 가까이 다가가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이 다니지 않는 도로위 멍석에 고추가 널려져 있다. 70대 노인 한 분이 갈퀴로 고추를 정리하고 있다. 아마도 고추가 골고루 발 마르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고추배를 가르지 않고 가위로 자른 상태다.
“왜 고추배를 가르지 않고 이렇게 자르셨나요?” “고추배를 자르면 건조 도중 고추가 말려 고추씨를 골라내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이렇게 잘라 말리면 씨가 잘 빠집니다.” 이게 바로 농부의 지혜다. 좋은 고춧가루는 씨가 적게 들어간다.
저수지 제방 아래에 텃밭이 있다. 이름하여 일월 행복 텃밭. 수원시에서 주민들에게 희망을 받아 분양한 것인데 볼거리가 많다. 농작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화초도 있다. 그래서 이 곳이 꽃보다 아름다운 텃밭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그리고 하늘엔 구름이 흘러간다. 아침 하늘엔 하얀 달고 함께 철새와 여객기가 지나가는 모습이 투영된다. 그래서 가을엔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아야 한다. 아, 이제 정말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