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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이어령의 보자기 인문학


보자기는 참으로 멋진 도구이다. 어떤 장소에 있어도 맡은 소임을 충분히 드러낸다. 시골에서 올라오시던 할머니의 보퉁이에 들어있던 잡곡과 고춧가루, 떡, 강냉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보자기가 열리고 수많은 것들이 이 구석과 저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심지어는 내가 좋아하는 제핏가루의 알싸한 가루도 어느 구석에서 발견되었다. 마술주머니같던 그 보자기는 화합과 소통과 유연함을 보여주는 대단한 존재이다. 책을 싸서 대각선으로 매면 책보가 되고, 밥을 담긴 도시락을 싸면 도시락이 되고, 아이를 업으면 포대기가 된다. 소중한 것은 모두 얇고 부드러운 천에 싸서 가로와 세로로 묶어 꽃처럼 매듭을 만들었다.

이어령선생의 책 [보자기 인문학]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싸다와 넣다'라는 이항대립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보자기의 싸는 특성을 동양문화적 섬세하고 다채로운 특성과 관련지어 이야기한다. 그에 비해 서양은 상자, 요람에 무엇인가를 넣는 문화로 이야기한다. 딱딱한 금고 속에 소중한 무엇인가를 보존하고 보호하려는 서양인의 문화적 양상을 보여준다. 동양은 보자기라는 부드러운 물체, 포를 통해 격식보다는 그 보자기 속에 싸여진 물건이 주체가 되어지는 싸는 문화임을 드러낸다.

이 책은 일본잡지에 연재되었다가 일본에서 출판되었던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여 발간되었다. 그래서인지 자료의 대부분이 일본의 문화를 예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출판을 위해 한국적 요소가 보강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항대립을 통해 설명하다보니, 이어령 교수의 탁월한 설명에도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가지는 부분이 뒤쪽에 보인다. 그렇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스마트한 이어령교수님의 영민한 눈빛과 탁월한 표현과 논리를 보면서 대단한 천재임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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