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자신있게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아픔은 존재한다. 어떻게 되면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가? 노동자는 해고나 파업 한마디만 꺼내도 눈깜짝할 사이에 눈이 빨개진다. 노점상 주인에게 무서울 법한 철거반원도 있지만 더 가슴 아픈 것은 자식이 잘 못되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있건 없건 자식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열망에는 아무 이유 없다. 그야말로 ‘묻지 마 교육’이다. 아이가 “엄마, 우리 집에 돈 없어서 어떡해?” 하면 “이놈의 새끼야, 너 하나 공부시킬 돈 없을 것 같아? 내 살을 베어 팔아서라도 너 공부시킬 돈은 만드니까 걱정하지 말고 공부해” 그런다.
아이는 엄마가 그러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의 그런 노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다. 엄마라면 ‘너만 공부하겠다고 하면 내가 파출부를 해서라도 밀어주겠다’는 것이 공통된 마음이다. 그런데 엄마들의 이런 노력이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아이의 공부에도, 장래에도 도움이 될 텐데, 최근에는 너무 과하고 극단적이기까지 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엄마들은 다들 시행착오를 겪고, 실수하고,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엄마들은 대부분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서 아이를 의존적으로 만드는 매니저형 엄마, 아이를 산만하게 만드는 갈대형 엄마, 아이를 반항적으로 만드는 CCTV형 엄마, 아이를 방황하게 만드는 방임형 엄마의 네 유형을 다 경험하게 된다. 먹고 살기에 너무 바빠서 “공부는 스스로 해야 한다”라고 말만 하고 아이에게 신경을 안 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너무 방임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학교에 한 번 찾아갈까?”라고 생각했다가 어느덧 세월이 다 가버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엄마에게 딸은 “엄마, 찾아가려면 8년 전에 갔어야지. 고등학생인데 이제 찾아가면 뭐해?” 하며 엄마에게 반항 섞인 말을 들은 적도 있을 것이다. 엄마의 시행착오로 아이가 의존형으로 되는 데에는 10년 밖에 안 걸릴지 모르지만, 자기 생존을 위해 의존형을 극복하는 데는 평생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뒤늦게 망쳐진 아이 인생을 수습하기보다 미리미리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서 엄마가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삶이 탁탁해져가는 현실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은 참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