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난 뒤, 잠시 소화라도 시킬 요량으로 교정을 거닐었다. 날씨가 조금 무더웠지만 산책하는 데는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다. 교정 여기저기 벤치에는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실 학교에 근무한 지 25년이 지난 지금 교정 어느 곳 하나 내겐 정들지 않은 곳이 없다. 매년 느끼는 것이지만 학교교정은 계절마다 다른 느낌과 운치를 가져다준다. 특히 6월, 교정 뒷산에는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밤나무 꽃들이 만발하고 교정 화단에는 온갖 꽃들이 수를 놓고 있다.
그런데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교정 여기저기에 뒹구는 쓰레기였다. 쓰레기 대부분은 무더워진 날씨 탓에 아이들이 먹고 버린 빙과류와 음료수 캔이었다. 아이들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에 쓰레기통이 비치되어 있음에도 말이다.
아이들이 버린 쓰레기를 주우면서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내 앞쪽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다가오는 한 여학생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심 청소 당번이 아니면 잘못한 일로 벌을 받는 중일 것으로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제일 먼저 눈에 뛴 것은 그 아이의 양손이었다. 그 아이의 양손은 더는 주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혀 있었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러니? 쉬면서 하렴.”
“……”그 아이는 내 말에 대답 대신 가벼운 묵례를 하면서 쓰레기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운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난 뒤, 교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목격했던 그 여학생이 몇 학년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 여학생에 대해 알 만한 선생님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다름 아닌 2학년 ○반의 ○○○였다. 매사 열심히 하여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받는 아이였다. 특히 학교 행사가 끝난 뒤,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남아서 뒷정리를 다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벌(罰)로 쓰레기를 줍고 있을 거라는 내 생각이 빗나간 것이었다.
강원도 고교 평준화가 시행된 지도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다. 평준화 원년 때보다 학생과 학부모의 불평과 불만이 많이 줄어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의 경우, 여전히 학교를 불신하고 요구사항 또한 많다.
비평준화 때의 경우, 아이들 대부분이 본인이 원하는 학교에 다녀서인지 그나마 모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러나 평준화가 시행되면서 아이들의 고교선택권이 없어졌다. 그래서일까? 원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한 아이들과 학부모의 원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모교에 대한 애정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겨진다.
더군다나 오로지 좋은 대학에 합격만 하면 그만이지 학교에 대한 애정이 안중에도 없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해, 고등학교는 대학에 가기 위해 거치는 하나의 과정일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 요즘 아이들의 생각인 듯싶다.
그나마 비평준화일 때는 졸업 후 많은 아이들이 학교가 그리워 다시 학교를 찾곤 하였으나 평준화 1세대가 졸업한 올해는 예전보다 많은 아이들이 학교를 방문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비평준화 때, 소위 지역 명문고를 졸업한 일부 사람들은 평준화 시행 이후 졸업한 아이들과 차별을 둬야 한다며 동문회 또한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평준화 이후, 고교 간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평준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일부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쉽게 변하지 않는 듯하다.
단언컨대 평준화 실시 이후, 아이들을 생각하는 선생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열정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도교육청의 학교 배정에 불만을 가진 일부 학생들과 학부모의 경우, 학교의 모든 학사일정에 비협조적이고 꼬투리를 잡아내려고 한다. 어쩌면 이와 같은 행동이 아이들로부터 애교심을 더 멀리 느끼게 만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요즘 학생들의 애교심이 예전보다 많이 퇴색해져 가는 것 같아 교사로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학생들이 여러 방법으로 애교심을 고취하고 있으나 과연 그 이면에 얼마나 많은 진정성이 묻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가 많다.
모교의 발전이 곧 자신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면서 모교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기보다 모교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 이 학생이 보여준 행동이야말로 진정 모교를 사랑하는 작은 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