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어렵다. 이 파도가 밀려와 대한민국서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명문대에 가면 성공과 행복이 보장되는 줄 믿었다. 하지만 이같은 신화가 지금 깨지고 있다. 얼마전 서울에서도 손가락으로 꼽는 명문대에 입학한 한 학생은 첫 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이런 이유는 5개월 남은 수능을 다시 준비하기 위해서다. 주변에서는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대학인데 왜 그러느냐"고 말렸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선택한 학과였지만 막상 입학해 취업 때문에 발을 동동거리는 선배들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는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나 '인구론(인문계 구십퍼센트가 논다)'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여겨 웃어 넘겼다.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한 것이었다. 많은 재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하며 피부로 느낀 취업난은 새내기인 그조차 더럭 겁나게 했다. 그는 고민 끝에 부모와 상의해 '반수'를 하기로 했다. 휴학을 하고 반학기 동안 수능을 준비해 좋은 성적이 나오면 새로운 대학을 선택하고, 여의치 않으면 복학할 생각을 갖고 있다.
취업을 위해 재수, 삼수도 하는데 한 학기 휴학쯤은 아무 것도 아니고 판단한 것이다. "반수를 해서 취업만 잘 된다면 남들에게 결코 뒤처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가에 반수를 선택하는 새내기들이 적지 않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대학이지만 취업 걱정에 휴학계를 내고 수능에 재도전하겠다며 입시학원을 찾고 있는 현실이다.
이를 피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아이의 성향을 알아야 부모가 아이의 선택을 믿어줄 수 있다. 한 부모는 교육 욕심에서 남들 못지않게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많이 시켰다. 피아노, 미술, 태권도를 비롯해 중학교 때는 교과목 학원도 보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있는 것보다 대외 활동을 할 때 더 능동적이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아들이 기술 명장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믿어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성향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부모는 “아이의 성향을 알고 나니 아이가 제 길을 가겠다고 나섰을 때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부모의 의견이 부담이 안 되도록 다양한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한 부모는 아들에게 넌지시 특성화 고등학교, 마이스터고 등에 대한 정보를 알려줬다. 자기가 스스로 택한 일을 할 때 책임감이 더 생길 거란 생각에 최대한 엄마의 의견이 부담이 안 되도록 했고, 아들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자 자녀는 진지하게 생각을 거듭한 뒤 실행에 옮겼고 마이스터 아카데미 등을 다니며 교육 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알아본 후 진로를 선택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대학보다 취업을 생각한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지방대생일수록 반수에 대한 고민이 더 크다. 충북의 모 대학에 입학한 한 남학생도 휴학하고 반수를 선택했다. 그는 지난해 수능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해 원했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문제는 적성과는 무관하게 점수에 맞춰 입학한 터라 학과 공부에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한 학기를 허송세월했다. 취업 걱정까지 겹쳐지자 그는 원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 재도전을 결심했다.
요즘 같이 취업 경쟁이 치열한 때라 우리가 상상하는 캠퍼스의 여유와 낭만은 사치가 된 것이다. 만일 실패해도 복학하면 되니 더 밑으로 내려갈 일은 없다는 것이 반수생의 생각이다.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여 서울의 유명 학원들은 물론 지방의 입시학원들은 대학 1학기 종강에 맞춰 앞다퉈 '반수반'을 개설, 수능 재도전에 나서는 대학생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대학 학적을 유지하면서 수능을 준비하는 반수생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는 추세다. 전국의 반수생 수를 따로 집계한 자료는 없다. 다만, 반수생 대부분은 1학기 기말고사 기간인 6월 수능 모의평가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 그 수를 추정해 볼 수 있다. 6월 모의평가에 응시한 재수생 인원과 11월 수능시험에 응시한 재수생의 차이를 반수생 숫자로 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한 유명한 입시학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반수생 수는 2013년 6만1천991명(전체응시 인원 대비 반수생 비율 10.1%), 2014년 6만6천440명(〃 10.9%), 지난해 6만9천290명(〃 11.4%)로 해마다 늘고 있다. 이달 실시한 2017학년도 6월 모의평가의 재수생 응시자 수가 6만8천192명으로 예년보다 1천명 이상 늘어난 점을 고려할 때 올해 반수생 수는 7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입시기관은 보고 있다.
반수생 증가는 수도권 명문대나 인기학과에 들어가려는 학생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휴학을 했다가 복학하지 않고 자퇴하는 학업 중도 포기 학생 비율을 보면 이런 분위기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대학정보 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연평균 학업 중도 포기 학생 비율은 2013학년도 4.15%, 2014학년도 4.18%, 2015학년도 4.13%로 비슷한 수준이다. 돈과 시간은 중요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현실 속에서 우리 나라 청소년들이 올바른 진로 선택이 요구된다. 이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학부모, 학생, 학교의 진로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