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20 (일)

  • 맑음동두천 19.2℃
  • 맑음강릉 13.4℃
  • 맑음서울 19.7℃
  • 맑음대전 17.9℃
  • 흐림대구 14.6℃
  • 흐림울산 12.2℃
  • 구름많음광주 19.9℃
  • 흐림부산 13.4℃
  • 흐림고창 13.6℃
  • 맑음제주 18.7℃
  • 맑음강화 14.8℃
  • 맑음보은 15.5℃
  • 맑음금산 17.3℃
  • 흐림강진군 15.4℃
  • 흐림경주시 12.7℃
  • 흐림거제 13.7℃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교단일기

원칙을 지키는 사회를 향한 소망

 어느 선생님이 생각난다. 그 분은 지금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시고 계신다. 강의계획서를 나눠주는 첫날에 어떤 경우라도 지각, 결석을 두 번 이상 할 경우 F학점을 준다고 학생들에게 선포를 하신다. 그리고, 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과제물도 기한을 넘기면 아예 받지 않으니 종강날 강의실 복도에는 학부모와 오토바이 택배기사가 과제물을 들고 기다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수강생들의 연락을 받고 황급하게 달려온 어머니 얼굴에 “정말로 성격 안 좋은 교수가 다 있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애써 무시하고 환한 얼굴로 과제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강의평가서에는 “조폭 교수는 지구를 떠나라”라는 등 별별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강생은 이런 선생님늬 방침을 이해해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학생만의 카페에는 이 선생님의 강의가 ‘강추’ 과목 윗자리를 차지한다고 한다니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을까.

공자의 제자인 증자도 원칙주의자였다. 하루는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아이가 울면서 매달리자 “시장 갔다 와서 돼지를 잡아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고 아이를 구슬린렸다. 시장을 다녀온 아내는 난데없는 돼지 비명을 듣게 된다. 증자가 뒷간에서 돼지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깜짝 놀란 아내가 울면서 남편을 만류했지만 “신뢰가 없으면 아이를 망치게 된다”며 주저 없이 멱을 땄다.

이같은 원칙 준수는 강의나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조그만 마을 공동체에서부터 국가 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특히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을 이루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방의원에 대한 신뢰는 바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그토록 신비하게 생각하는 로마제국의 천년 영화도 따지고 보면 상황 논리에 기댄 재량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하는 법의 지배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은 실제 과학적으로도 증명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핀 키들랜드와 에드워드 프레스콧은 1977년 ‘재량보다는 원칙’이라는 논문에서 비록 정직한 정부라 하더라도 융통성보다는 원칙을 지킬 때 정책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왜 재량보다는 원칙이 먼저일까? 그것은 사회적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거래나 계약은 거래 당사자 간의 신뢰를 필요로 한다. 거래는 신뢰 수준과 같은 거래비용의 영향을 받는다. 원칙 준수는 거래비용을 낮추지만 재량은 반대로 거래비용을 높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중심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아시아에서는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다. 원칙이 먹히지 않는 저신뢰 사회라는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지적했듯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사회적 자본 지표는 가장 바닥권이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현금이 든 지갑을 분실할 경우 돌아올 확률이 북유럽 국가에 비해 4분의 1에 그치는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에서 유명한 하버드대학에 ‘사와로 연구소’라는 권위 있는 사회적 자본 연구소가 있다. ‘사와로’는 애리조나와 텍사스 일대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이름이다. 이 선인장은 사막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구실을 한다고 한다. 어떤 선인장의 수명은 그렇지 않은 선인장에 비해 수명이 매우 길다. 지상으로 자라는 줄기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길고 튼튼한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버드대학은 사회적 자본 연구소의 이름을 ‘사와로’로 붙인 것이다. 서로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 사회는 튼튼하고 건강한 사회로 발전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분명히 아주 짧은 시간동에 고속 성장을 하였다. 그 가운데는 '잘 살아보세'라는 덕목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이 본질은 아니다. 앞으로 세상은 잘 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바르게 살아보는 것이다. 바르게 사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어려서부터 이 원칙을 가르치고 원칙에 따라 우리가 사는 공동체가 운영되어야 한다.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를 꿈꾸는 출발은 어디에서 시작되어야 하는가? 바로 내가 사는 작은 아파트 단지에서부터,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눈만 뜨면 수없이 나타나는 갈등들이 우리 눈 앞에 나타난다. 주차장이 아닌 곳에 버젓이 차를 세워놓는 사람들, 이 가운데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이러한 규율을 깨고 자기 편의만을 위하여 살려고 하는 사회는 희망을 만들기 어렵다. 이 희망은 작은 것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의 무질서한 주차질서, 사소한것 같지만 학생들이 교칙을 어기는 것은 자기 편의주의만을 따른 것이다. 모두가 사회적 자본에 대해 고민해볼 때다. 원칙이 바로 서는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