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외부에서 한국을 보는 시각도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한 나라가 정체 상태에 빠지는 건 언제인가. `법과 제도가 쇠퇴하면서 지대(rent)를 추구하는 특권층이 경제와 정치를 지배할 때`라고 2세기 전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지적하고 있다. 그의 통찰을 빌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경고했다. 서양은 이미 정체되고 있으며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최근에 보는 영국이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우리나라에서도 '창조주보다 건물주'가 되기를 희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퍼거슨은 제도의 쇠퇴를 드러내는 네 개의 블랙박스를 제시한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법치주의, 시민사회의 문제다. 첫째, 민주주의. 미래 세대에 빚을 떠넘기는 정치가 문제다. 선진국의 어마어마한 공공부채는 투표권조차 없는 세대를 희생시켜 오늘의 유권자들을 부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 정부 역시 국가 채무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현 정부 마지막 해인 내년까지 다시 250조원 가까이 늘어날 것이라는 에상이다. 우리는 10년 새 400조원 가까운 빚을 아들과 손자 세대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물론 소득이 빠르게 늘면 눈덩이 빚도 문제없다. 인플레이션으로 빚의 무게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도저도 안 되면 디폴트로 가는 수밖에 없다.
둘째, 자본주의. 거미줄 규제에 얽매인 경제가 문제다.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는 그 자체가 질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선진국들은 온갖 규제를 새로 만들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안전해지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정부는 낡은 규제를 `원수`로 규정했다. 하지만 개혁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사`자 돌림 직역의 지대 추구는 여전하다. 청년들은 영혼을 팔아도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없다. 자산 1조원 이상 부자 넷 중 셋은 상속자다. 기회의 문이 닫힌거나 다름없다. 이들이 상속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만들었다.
셋째, 법치주의. 법치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길고 난해한 법을 남발하는 이들이다. 오늘날 미국은 법률가들이 통치한다. 퍼거슨은 법률가들이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에 기생하고 있다고 쏘아붙인다. 한국은 어떤가. 행정과 입법부는 물론 기업까지 율사들이 주무르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6명 중 1명은 법조계 출신이다. 입법만능주의가 도를 넘으면 관료와 판사들은 국회의 로봇으로 전락한다. 기업가의 혁신은 자꾸만 발목이 잡힌다.
넷째, 시민사회. 자발적 참여가 사라진 공동체의 문제다. 그런 사회는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보다 앞선 부자 나라였다. 그때까지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그 후 한 세기 동안 줄곧 퇴보했다. 한국도 반세기 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성장가도를 질주했다. 1970년대에는 한 해 10% 넘게 성장했다. 2000년대 첫 10년까지만 해도 5%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금은 성장률 3%에 턱걸이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소득으로 가늠한 대외구매력은 뒷걸음질했다고 한다.
한국은 21세기의 아르헨티나가 될 것인가. 과연 그런 걱정은 지나친 걸까. 퇴보를 피하려면 국가 거버넌스와 발전 전략의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정치권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써야 한다. 미래 세대의 희생을 막기 위한 세대 간 회계 장부도 필요하다. 또한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면서 뒤처진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어야 한다. 저성장과 불평등 중 어느 문제를 먼저 풀거냐를 놓고 싸우는 건 어리석다.
화석화된 법규는 유연하게 진화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 기풍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 재창조를 위한 구조개혁이며 경장이다. 올해와 내년은 한국의 재도약과 퇴보를 가름할 역사적 분기점이 될 것이다. 이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도 달라져야 한다. 10년 동안 `제3의 길`로 영국을 바꾼 토니 블레어는 리더십을 이렇게 정의했다.
"리더십은 사람들의 바람을 알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최선의 이익이 뭔지 알고 그 일을 실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다 표를 잃게 되지 않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이렇다. "권력을 잃을 준비를 하되 늘 원칙을 지키는 게 권력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는 본질적인 문제에 타협하고 굴복하느니 패배하기로 결심했다." 위대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현명한 유권자들은 결국 그런 지도자를 알아볼 것이다. 국민의 뜻과 일치하는 지도자를 찾아내고 이것이 가능한 사회가 요구된다. 지금은 모두가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