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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잊을 수 없는 두 분의 은사님

“얘들아, 내일은 간편복 입고 오거라.”

매주 토요일 오후 떠나는 담임선생님과의 등산이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내게는 싫었지만 호랑이 선생님의 말 한 마디에 일제히 “예”라는 짧은 대답만을 하고 교실을 나와서야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산 좋아하시면 혼자나 가시지 왜 꼭 우리들을 데려가려고 하냐?”

까까머리 중학생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의 등산 동행이 싫은지 한마디씩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형님께서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새마을 청소년 중학교를 권유하셨다. 형님의 입장에서 가까운 거리지 사실 한 시간 정도를 걸어서 산을 몇 개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정식 중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못지않게 교복을 입고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시골 길을 걸어서 가려면 배에서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났다. 담임선생님은 닥치는 대로 우리들을 산으로 끌고 다니셨기에 유격훈련이라도 받는 느낌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우리들이 들고 있는 가방 몇 개를 들어주었고 체력이 약한 친구들을 등에 업고 한참을 가셨다. 산 중턱에 오를 때 쯤 당시 인기만점이었던 보름달 빵과 크림빵에 환타까지 잔뜩 가져오셔서 한바탕 잔치판을 벌였다. 선생님의 배낭은 보물 보따리였다. 맛있는 간식을 먹는 즐거움에 출발 전에 늘어놓았던 불평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선생님, 다음 주에도 산에 와 유?” 라고 여쭤보면 “그래.” 하시며 빙긋이 웃으셨다. 산중턱에서의 간식은 1절에 불과했다. 산 정상쯤에 오르면 담임선생님께서 손수 라면을 끓여주셨다.(당시에는 산에서 공공연히 취사를 했었다.)

“우와, 너무 맛있어요.”

“후르륵 쩝쩝” 소리를 내며 라면 한 가닥이라도 더 먹으려고 말 한마디 없이 국물까지 시원하게 먹어치웠다. 배고픈 시절, 빵과 라면은 가뭄에 단비와 같은 귀한 존재였다.


꿈만 같았던 새마을 청소년 중학교의 시간이 반년 정도 흘러 갈 무렵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불쑥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공부를 잘했던 제자가 정식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고 하셨다. 밭일을 하다 말고 헐레벌떡 달려오신 어머님께 봉투 한 장을 내밀면서 중학교 입학금에 보태라고 했단다. 결국 이듬해 정식 중학교에 입학해서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힘이 들면 가끔씩 두 분의 선생님이 불쑥불쑥 생각난다. 당시에는 모든 형편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을 텐데 물심양면으로 제자를 위해 헌신 봉사하셨던 두 분의 은사님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시 잡곤 한다. 두 분의 은사님이 그러하셨듯이 아이들에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르쳐주는 정 많은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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